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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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호주 와인, 쉬라즈만 있는게 아니다

호주 와인 그랜드 테이스팅 2016 열려 다양한 와인 선보여

 

여기 재미있는 지도가 하나 있다. 호주 대륙 지도다. 가만히 보니 호주 대륙 지도에 유럽이 전체가 들어가 있다. 유럽을 통째로 집어 넣었는데도 아직 공간이 많이 빈다. 호주 대륙은 적도를 기준으로 남위 10∼44도, 서경 112∼155도에 걸쳐있다. 서부 퍼스에서 동부 시드니까지 4100㎞, 아들레이드에서 시드니까지 1500㎞, 멜버른에서 아들레이드까지 730㎞가 된다니 그 광활함에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광활한 만큼 고도, 토양 유형, 기후가 다양하다. 보통 호주 와인하면 식스팩 복근을 지닌 ‘짐승남’ 같은 와인 쉬라즈(Shiraz)를 떠올리지만 사실 호주는 이런 조건때문에 쉬라즈외에도 다양한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유럽 전체를 넣고도 남을 정도의 광활한 호주 대륙.
자료=호주무역대표부
세미나를 진행중인 호주 와인 작가 데니스 게스틴. 호주무역대표부 제공
지난 6일 JW 메리어트 동대문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호주 와인 그랜드 테이스팅 2016’은 이런 호주 와인의 역사와 다양성, 실험적인 시도를 한번에 엿볼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호주대사관 무역투자대표부와 와인 오스트레일리아가 마련한 이 행사는 미수입 와이너리 14곳을 포함, 호주 와인업체 35곳이 330종의 와인을 선보였다. 호주 와인 그랜드 테이스팅은 올해로 3번째다.
호주 와인 그랜드테이스팅 2016 현장

호주 65개 와인산지의 거의 모든 와이너리가 쉬라즈를 재배할 정도로 쉬라즈는 호주를 대표하는 품종이다. 실제 호주 전체 포도밭의 30%가 쉬라즈다. 레드품종만 따지면 전체의 46%나 된다. 호주 와인의 역사는 최초 유럽 정착민이 포도나무를 들여와 1788년 시드니에서 재배하면서 시작됐다. 1828년 헌터 밸리의 윈덤 에스테이트(Wyndham Estate)가 가장 처음 상업적인 쉬라즈를 심었다고 한다. 이어 1840년대 바로사밸리, 1860대 빅토리아로 확산됐는데 당시 심어진 포도나무에서 현재도 와인이 생산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비록 신대륙이지만 고대 포도나무가 아직도 힘차게 자라고 있는 셈이다. 호주도 1890년 전세계를 휩쓴 포도병 필록세라의 광풍을 비켜가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살아남은 포도밭은 아직도 건재해 프리미엄 쉬라즈를 맺고 있다.

이처럼 호주하면 쉬라즈이지만 기자는 자칫 ‘뻔할수 있는’ 쉬라즈 대신에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들을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광활한 호주 대륙 와인의 다양성을 직접 느끼고 싶어서다. 실제 이날  2010년 '와인의 오스카상 '으로 불리는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IWC) 최고 와인으로 선정된 쏜 클락 윌리엄 랜들 카베르네 소비뇽을 비롯해 정말 다양한 호주 와인들이 소개됐다. 

쏜 클락 윌리엄 랜들 카베르네 소비뇽
쏜 클락 와인 관계자

브라운 브라더스 모스카토
그란트 버지 모스카토
브리스데일 스파클링 쉬라즈
브리스데일 와인 관계자
쉬라즈 스파클링, 모스카토, 비오니에, 리슬링, 피노누아 등 다양한 와인들이 선보여 '호주 와인=쉬라즈'라는 공식을 깨기에 충분했다. 그랜드 테이스팅과 함께 마련된 ‘호주 쉬라즈 세미나’에서도 새 스타일의 와인이 주목받았다. 세미나에는 1800년대 심어진 올드바인 쉬라즈 3종과 새로운 스타일의 호주 쉬라즈 4종, 실험적인 시도를 담은 와인 2종 등 9종의 와인을 들여다 봤다.  
탑퍼스 마운틴 와일드 퍼먼트 쉬라즈 비오니에
이날 세미나 참석자들한테 가장 비상한 관심을 모은 와인은 새 스타일의 호주 와인중 탑퍼스 마운틴 와일드 퍼먼트 쉬라즈 비오니에(Tappes Mountain Wild Ferment Shiraz Viognier)다. 개인적으로 별 3개 만점에 3개를 주고 싶다. 쉬라즈에 비오니에를 블렌딩한 것 자체가 매우 이채롭다. 비오니에는 3%만 들어갔지만 말린 살구 등 과일의 풍미가 잘 들어나는 매력적인 와인이다. 화산토의 떼루아 특징을 잘 드러내기 위해 자연 이스트를 사용했고 줄기를 포함해 포도송이 전체를 발효하는 ‘홀 번치 퍼먼테이션(Whole Bunch Fermentation)’을 사용해 과일의 특징을 잘 드러냈다. 사실 포도송이 발효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많이 사용하는 양조방식이다.

이런 새로운 시도는 그랜드 테이스팅 현장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미수입 와인중에 새로운 시도를 한 와인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와이너리가 알파 박스 앤 다이스(Alpha Box & Dice)다. 2008년 포도재배 연구를 위한 실험기관으로 설립된 와이너리라고 한다. 와인마다 알파벳이 새겨져 있는데 각 문자를 대변하는 풍미, 외관, 지향점이 전혀다른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강한 호주 스타일에서 벗어나 전반적으로 매우 우아한 스타일의 와인들이다. 놀라운 것은 이탈리아 투스카나의 몬테풀치노, 피에몬테의 돌체토, 그리고 알리아니코까지 이탈리아 대표 품종으로 빚은 와인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호주에서 이탈리아 품종이라니! 정말 이채로운 조합이 아닐수 없다. 호주 와이너리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을 시도한 셈이다. 호주에서 기른 몬테풀치아나, 돌체토, 알리아니코는 이탈리아 보다 산도는 다소 낮고 향이 더 풍성한 와인으로 변신했다. 특히 알리아티코는 산도가 잘 받쳐주는 잼같은 느낌을 준다.  
알파 박스 앤 와인들
알파 박스 앤 다이스 와인 관계자
또 스파이시한 향이 느껴지는 화이트 와인 골든 물렛 퓨리 세미용 비오니에(Golden Mullet Fury Semilon Viognier)도 매우 반응이 좋았다. 알파 박스 앤 다이스 와인들은 국내 수입사들이 몇 차례 수입을 시도했는데 단가가 좀 높아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른시일내에 수입되기를 기대해 본다. 알파 박스 앤 다이스는 통통튀는 레이블로도 눈길을 끌었다. 컬트적인 느낌의 레이블은 호주와인에서 많이 나타나는 경향인데 한편의 팝 아트를 보는 듯하다. 

애그뉴 와인
또 다른 미수입 와인 애그뉴 와인(Agnew Wines)도 쉬라즈 외에 이탈리포르투갈의 주정강화와인 마데이라에 많이 쓰이는 베르델호, 프랑스 보르도 품종인 세미용과 프랑스 알자스 품종인 피노 그리 등 다앙한 화이트 와인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오드리 윌킨스(Audrey Wilkinson)과 콕파이터스 고스트(Cockfighter´s Ghost)가 대표 브랜드다. 오드리 월킨스는 150년동안 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한 와이너리로 호주 헌터 밸리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중 하나다. 콕파이터스 고스트는 재미난 스토리가 있다. 호주 전설의 명마중에 하나인데 쉬라즈 와인 한모금을 마시면  마치 콕파이터스 고스트가 되살아나 마구 질주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단다.

최근 호주는 기후변화에 따라 서늘한 곳으로 옮겨 와인을 재배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언덕이나 구릉지가 좋은 선택이 되고 있다. 서늘한 기후로 최근 각광받는 곳이 뉴 사우스 웨일즈 지역, 오렌지 지역인데 미수입 와인 프린씨(Printhie)는 이 곳에서 프리미엄 와인을 빚고 있다. 기후에 맞게 쇼비뇽 블랑, 샤르도네, 피노 그리 등 화이트 와인을 비롯해 메를로, 쉬라즈, 카베르네 소비뇽 등 다양한 레드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프리미엄 스파클링 와인도 소량 생산하고 있다.
프린씨 와인 관계자
프린씨 샤르도네와 쉬라즈
서늘한 기후를 선호하는 경향은 바로 최상급 쉬라즈를 얻기위해서라고 한다. 스파이시, 흑후추의 향은 최고급 쉬라즈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다. 호주 와인 작가 데니스 게스틴(Denis Gastin)이 진행한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런 향이 ‘로턴던(Rotundone)’ 이란 성분때문이라는 호주와인연구소의 연구결과가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로턴던은 올림픽 규격 크기의 수영장에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수영장 전체에 후추향이 날 정도로 강력하단다. 과거 인도와 중국에서는 약용으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로턴던은 백후추와 흑후추에 가장 함량이 높고 로즈마리, 바질에서도 발견된다. 로튼돈은 좀더 서늘한 지역의 쉬라즈에서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와이너리들이 서늘한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호주를 대표하는 쉬라즈도 전통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시도가 많이 늘고 있다. 프랑스 와이너리 엠 샤프띠에는 론 스타일의 와인을 호주 포도에 접목하고 있다. 빅토리아주 히스코트를 근거지로 북부론의 프리미엄 와인 꼬뜨 로띠 스타일의 와인을 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와인 이날 소개된 도멘 텔라토 샤푸띠에 마라코프 쉬라즈 (Domaine Terlato & Chapoutier Malakoff Shiraz) 2013이다. 엠 샤프띠에 오너 마이클 샤프띠에(Michel Chapoutier)가 나파밸리의 앤토 텔라토(Anthony J. Terlato)와 함께 협업으로 만든 브랜드라고 한다.
양가라 스몰 포트 홀 번치 쉬라즈
미국을 대표하는 10대 와인 생산자인 잭슨 패밀리 와인즈 남호주 맥라렌베일 산지의 프리미엄급 포도밭을 인수해 론 품종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스타일의 와인 생산을 시도하고 있다.  주로 쉬라즈에 집중하지만 그르나슈, 무르베르드, 마르싼느, 비오니에를 생산한다. 이날 양가라 스몰 포트 홀 번치 쉬라즈(Yangarra Small Port Whole Bunch Shiraz) 2014를 시음했다. 과일의 특징을 잘표현주는 와인이다. 스몰 포트는 100~200ℓ 또는 배럴당 조금씩 따로 양조해서 블렌딩한다는 의미다.

호주의 전통적인 쉬라즈는 얘기도 빼놓을 수는 없겠다. 이날 세미나에 나온 올드바인 쉬라즈 3종은 말그대로 호주 와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 하다. 티렐스 스티븐스 빈야드 쉬라즈(Tyrrell´ Stevens Vineyard Shiraz) 2014는 호주 와인 산업이 태동한 헌터 밸리 와인이다. 1867년 심은 포도나무로 빚었다. 티렐스 와인( Tyrrell´s Wines)은 영국 이민자인 에드워드 티렐(Edward Tyrrell)이 1863년에 세운 와이너리다. 앞서 1858년에 최초로 포도나무를 심어 1864년에 첫 빈티지를 생산했다. 스티븐 빈야드에는 1867년에 심은 일부 포도나무가 생존해 있는데 헌터 밸리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라고 한다. 오크 숙성 아로마와 함께 붉은 과실향 많이난다. 호주 와인평론가들 2014 빈티지를 최고의 빈티지로 평가한다.  호주와인 평론가로 유명한 제임스 할리데이(James Halliday)가 96점을 줬다. 헌터 밸리 스타일을 잘 표현한 와인이다. 과일 풍미가 지나치게 반영되지 않고 오크 풍미도 적당한 수준으로 전반적으로 복합미가 강조된 와인이다.

쉴드 에스테이트 무루루 리미티드 쉬라즈
티넬스 스티븐스 빈야드 쉬라즈
쉴드 에스테이트 무루루 리미티드 쉬라즈(Schild Estate Moorooroo Limited Shiraz) 2012는 1847년 심은 포도 나무로 빚는데 현재 4열만 남아있다고 한다. 생산량도 매년 200케이스에 불과하다. 진한 퍼플칼라로 농축된 과일 풍미가 특징이다.  티렐스 쉬라즈가 올드바인을 10~20%만 사용하지만  쉴드 쉬라즈는 100% 1847년에 심은 올드바인만 사용한다니 169년 역사를 맛본셈이다. 포도 알갱이 작아 농축미가 매우 높은 포도가 생산된다.
타빌크 와이너리 홈페이지
타빌크 1860 바인스 쉬라즈(Tahbilk 1860 Vines Shuraz)는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 1860년대 처음으로 심은 포도나무로 만든다. 당시 심은 포도나무중 절반 정도가 생존했으며 US 와인&스피릿이 세계 25대 와인으로 선정됐다. 티렐스가 병당 45달러, 쉴드가 100달러인데 타빌크는 300달러를 호가하는 프리미엄 와인이다. 탄닌 강하면서 산도가 잘받쳐주는 와인이다.

페퍼민트 그로브 카베르네 소비뇽
호주무역투자대표부의 아만다 호지스 대표는 “지난해 한국의 호주와인수입은 2014년 대비 수입량 기준 36% 증가했다.국 소비자들은 호주 쉬라즈를 꾸준히 선호하면서  다른 품종으로도 선택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호주 까베르네 쇼비뇽과 샤르도네의 수입은 수입량 기준 각각 51%, 91% 로 대폭 늘었다"고 설명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