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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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동녘 땅끝 섬의 섬광… 뱃사람의 달·별 그리고 희망

동해바다 ‘외로운 섬’ 독도 불빛 지키는 등대원들
<<사진 = 추석연휴기간인 지난 9월14일 오후 경북 울릉군 독도에서 신성철 주무관이 일몰 시간에 맞춰 등탑에 올라 등명기를 가동하고 있다. 등대 가동시간은 계절이나 기상에 따라 조정된다. 드론을 이용해 독도와 등대의 모습을 담았다.>>
동녘 끄트머리 작은 돌섬에서 섬광이 새어 나온다. 빛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넓은 바다 한가운데 작은 반짝임. 뱃사람의 눈에 비친 위태로운 빛은 곧 안도와 희망으로 바뀐다. 빛을 따라가자 하얀색 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독도의 이야기다.
<<사진 = 독도 등대의 나선형 계단에서 등대원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근 소장, 김덕삼 등대원, 신성철 등대원.>>

독도 등대는 동해상 신호체계의 최전방에 있다. 등대는 독도를 세상과 연결하기 위해 그토록 외지고 외진 곳에 서 있었다. 독도의 가파른 절벽 꼭대기에 위치한 등대는 동도 선착장에서 나무계단 333개를 올라야 닿을 수 있다. “우리 땅, 우리 땅”이라는 외침 뒤에 가려진 ‘사람 사는 곳’으로의 평범한 일상을 찾아 계단을 올랐다.

<<사진 = 독도 선착장에서 등대원들이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고 있다. 선착장과 등대를 연결하는 계단은 총 333개다.>>
<<사진 = 신씨가 등탑에 올라 파리판이라 불리는 외부유리창을 닦고 있다. 파리판이 깨끗해야만 등명기의 빛이 멀리까지 도달할 수 있다.>>
독도의 등명기는 10초에 한 번씩 깜박인다. 이 주기는 독도만의 독자성이다. 뱃사람들은 초를 세어 위치를 파악한다. 모든 등대가 마찬가지로 저마다 주기를 가진다. 독도 등대가 전하는 신호는 40㎞까지도 가닿는다. 독도 등대는 1954년 8월에 최초로 점등했다. 줄곧 무인시스템으로 운영되다 관리의 안정성과 사고 위험을 고려해 1998년 12월 유인등대로 전환됐다. 
<<사진 = 수중작업을 마친 신씨가 선착장으로 돌아가며 등대를 바라보고 있다.>>
신성철(40) 주무관은 당시 첫 독도 등대원으로 임용됐다. 그렇게 독도 등대는 마냥 바다가 좋았던 23살 청년의 첫 직장이 됐다. 8년 차 독도 지킴이인 그는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퇴직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사진 = 등대 창고에서 김 소장이 연장을 수리하고 있다. 손재주가 뛰어나 등대의 모든 설비를 직접 수리한다.>>
여름이 지나 갈매기가 모두 떠난 돌섬 정상은 달달대는 발전기 소리뿐이다. 독도에선 자급자족해야 한다. 석유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해수 담수화 설비를 가동해 마실 물을 만든다. 김재근(56) 소장은 “독도에서 물 한 컵은 기름 한 컵과 같다”며 빗물 저장탱크를 보여줬다. 구정물 한 방울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그들의 생활습관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사진 = 신성철 주무관(아래쪽)과 김덕삼 등대원이 물탱크를 보수하고 있다.>>
<<사진 = 김 소장이 물탱크를 보수하던 중 배관에 낀 염분을 보여주고 있다. 담수화 과정을 거친 바닷물은 여전히 염분이 남아 있어 보일러나 급수 배관에 고체 불순물을 생성한다.>>
<<사진 = 숙소에서 아침 식사 중인 등대원들.>>
등대에는 포항지방해양수산청 소속 등대원 6명이 3명씩 2개조로 나눠 한 달씩 근무한다. 한번 입도하면 꼬박 한 달 동안 ‘바깥세상’과 분리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세 사람은 섬 안에서 삼시 세끼를 함께 하는 식구가 된다. 먹거리를 책임지는 김덕삼(41) 등대원은 “시곗바늘 세 개가 함께 돌아가듯 우리 셋이 싫든 좋든 함께 시간을 보낸다”며 빙그레 웃었다.  
<<사진 = 독도에 관광객들이 들어왔다. 30분 정도 머물다 떠나는 관광객들은 독도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외부인이다.>>
<<사진 = 등대 옥상에 양파가 걸려있다. 한달 주기로 근무 교대하는 등대원들은 대량의 부식을 준비해 섬에 들어온다.>>
처음엔 밥도 지을 줄 몰랐다는 김씨는 이제 웬만한 찬거리는 맛깔나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기본적으로 식재료를 넉넉히 준비하지만 간혹 기상악화로 체류 기간이 길어질 때면 맨밥을 먹으며 지난한 시간을 버텼다고 한다.
<<사진 = 신씨가 등탑을 점검하던중 선착장으로 들어서는 여객선을 바라보고 있다.>>

“살면서 중요한 순간을 많이 놓쳤어요.” 신 주무관은 팔삭둥이 큰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내 곁에 있지 못했다. 그는 “집에 갈 때면 아이들이 데면데면하다”며 “등대원이 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상과의 거리를 인정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유난히 자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배경화면엔 밝게 웃고 있는 두 아들이 있었다.

<<사진 = 두 아들의 사진을 보고 있는 신 주무관.>>
<<사진 = 신씨가 등탑에 올라 야간점검을 하고 있다.>>

“뱃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별자리와 달의 위치를 보며 길을 찾았다지요. 매일 밤마다 바다로 빛을 비추는 등대는 그들에게 달이고 별인 겁니다.” 신 주무관이 지난 추석날 밤 등대 위로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진 = 경북 울릉군 독도 등대가 빛을 발산하고 있다. 독도의 등명기는 10초에 1회 주기로 반짝인다.>>
독도의 등대는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는 등대원의 소리 없는 따스한 불빛이다. 오늘 밤에도 독도의 등대원은 달과 별이 되어 바다 위에 떠 있을 누군가를 위해 희망을 쏘아 올린다.

독도=사진·글 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