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찬 소방관이 근무지인 인천공항소방서에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있다. 구급대원으로 일했던 최 소방관은 척수장애인이 된 뒤 서무·행정 업무를 맡고 있다. 인천공항소방서 제공 |
김씨의 죽음은 척수장애인 재활시스템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는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장애 앞에서 과거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는 “체계적인 지원이 됐다면 김씨가 재능을 살려 사고 전 일상으로 돌아가고 경제적 자립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죽음 이후 2년이 흘렀다. 그러나 재활시스템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취업이 최고의 재활’이라고 말한다. 경제적 자립을 돕는 것은 물론 자존감을 높이고 규칙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삶의 의욕을 고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척수장애인들은 한창 일할 시기임에도 직업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17일 척수장애인협회의 2015년 척수장애인 600명 대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척수 손상 이전 무직 비율은 14%였지만, 손상 후에는 73%로 대폭 늘었다. 장애가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에도 원치 않는 일을 하거나 임금이 줄어든 사람이 많았다.
척수장애인 대부분은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장애인은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은 복귀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최 소방관의 경우 성공적으로 직장에 복귀한 사례로 꼽히지만 수년간 소송을 이어가야 했다는 점은 척수장애인의 현실을 보여준다.
근무환경에 장애인 시설이 없는 점도 걸림돌이다. 최 소방관은 소방서에서 경사로와 전용주차장 등을 만들어줬지만, 민간 기업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정보기술(IT) 업계에서 근무했던 척수장애인 이모(35)씨는 관련 직종에 재취업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씨는 “다리만 불편할 뿐 일하는 것은 자신있는 데 대다수 직장이 장애인 시설도 없고 장애인을 부담스러워한다”며 “그동안의 경력이 사라지는 것 같아 허무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각 구립 장애인복지관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직업교육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척수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교육이 적다는 점이다. 척수장애인협회의 ‘2015년 척수장애인 욕구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학력은 고졸 42.4%, 대학 재학 이상 38.6%였다. 상당수는 직장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복지관의 직업교육은 지적장애인이나 뇌손상 지체장애인 위주여서 인지능력이 온전한 척수장애인에게 맞지 않는 교육내용이 대부분이다. 김의종 서울척수장애인협회장은 “척수장애인은 보건복지부의 장애 분류에서 지체장애인에 속해 복지관이 척수장애인 프로그램으로 예산을 받기 어렵다”면서 “척수장애인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이 부족하고 복지관에서도 척수장애인을 잘 몰라 프로그램이 있더라도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재활시스템이 척수장애인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최혜영 척수장애인협회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장은 “장애인의 임금 수준이 낮아 기초생활수급자가 받는 돈과 큰 차이가 안 나는데, 일을 하면 의료비 지원 등이 끊겨 오히려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척수장애인 실태조사에서도 일을 하지 않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서’라는 응답이 14.2%로 ‘일할 기회가 없어서’(8.6%)보다 많았다. 황화성 한국장애인개발원장은 ‘장애인 자살 예방을 위한 사례연구’ 보고서에서 “장애인 직업재활은 자존감을 높여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라며 “장애인의 욕구와 장애 유형에 따른 다양한 맞춤형 직업재활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나·이창훈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