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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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124개 '지옥계단' 문제 많은 인천지하철 2호선 가좌역

지난 19일 인천지하철 2호선 가좌역의 2번 출입구에서 한 시민이 끝이 안 보이는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이 출구를 이용해 지하 역사에 도착하려면 93개 계단을 거쳐야 한다.
"운동 삼아 다니지만 너무 힘들어요!"

지난 19일 오후 인천지하철 2호선 가좌역 1번 출입구. 20대 청년이 땀을 뻘뻘 흘리면 한걸음씩 계단을 오르면서 이 같이 말했다. 끝없이 갈수록 그 속도는 조금씩 더뎌진다.

1번 출구의 계단은 모두 124개나 된다. 높이는 22m로 아파트 7층과 맞먹는다고 하는데,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지하철을 이용하다가 산행하는 꼴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끝이 보이지 않을 이어진 계단을 직접 올라가 보았다. 30대 남성인 기자가 카메라를 메고 계단을 이용해 1번 출구 밖으로 나가는데 걸린 시간은 2분 남짓.

2번 출구는 사정이 조금 나았지만, 역시 계단 93개를 통과해야 했다.

계단을 오르며 취재하는 동안 기자를 뒤따르는 시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따금 행인이 보였지만 대부분 내려가는 이들이었다.

 
지난 19일 오후 인천지하철 2호선 가좌역의 1번 출입구에서 한 시민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이 출구의 계단은 무려 124개인데, 아파트로 치면 7층 높이에 해당한다.

누리꾼들은 가좌역 1·2번 출구의 계단을 '지옥 계단', '헬 계단' 또는 '천국의 계단'이라고 부른다. 에스컬레이터가 없어 오르려면 지옥이나 천국에 갈 정도로 생고생을 해야 한다고 해 이런 별명이 붙었다.

지난해 여름 개통한 인천지하철 2호선의 몇몇 역사는 가좌역처럼 에스컬레이터 없이 높고 가파른 계단 출구로 설계돼 원성을 산다. 경인고속도로와 맞닿은 좁은 도로 위에 역사가 들어서 에스컬레이터를 위한 공간 확보가 어려운 데다 진동 등의 문제로 유지 보수조차 힘든 탓이다.

이에 가좌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계단 대신 승강기 앞으로 모여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출·퇴근이나 등·하교 시간에는 승강기를 타기 위해 수십명이 한꺼번에 몰려들기도 한다.

한 시민은 "124개나 되는 계단을 오르려면 힘들다"며 "보통 지하철역 승강기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한 시설인데, 이곳에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19일 오후 인천지하철 2호선 가좌역에서 승강기 이용하려는 시민들이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가좌역에서는 시민들이 가파르고 기다란 계단의 이용을 꺼리다 보니 대합실 내 승강기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문구까지 붙어있었다.

에스컬레이터 없이 최대 124개의 계단으로만 이루어져 '지옥 계단'이란 오명까지 얻은 가좌역의 출입구에 대해 일각에서는 예산 2조3000억원을 도대체 어디 썼느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또한 화재와 같이 승강기를 이용할 수 없는 비상사태를 대비한 명확하고 효율적인 대책도 시급한 상황이라고 시민들은 지적한다.
 
인천지하철 2호선의 누적 이용객이 3000만명에 달하지만, 개통 당시 제기됐던 문제들은 지금도 개선된 점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시민들은 “하루빨리 에스컬레이터를 새로 설치하거나 승강기를 추가 설치하는 등 지하철 이용객들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9일 오후 인천지하철 2호선 가좌역 대합실 내 승강기에 "모든 이용자 사용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지난해 7월1일 개통한 인천지하철 2호선은 이후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일정 시간 후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무인 원격제어 시스템을 도입하는 바람에 아이를 태운 유모차만 싣고 어머니는 역사에 남겨놓은 채 전동차가 출발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탈선 사고를 모의 훈련이었다고 공식 발표했다가 거짓말로 드러나 전 인천교통공사 사장 직무대행 등 주요 간부들이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공사는 사고 때마다 대책 마련을 약속했으나 악재가 지속돼 시민들의 불안은 가중되는 실정이다.

글·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