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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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점심 먹고 커피 한 잔의 여유… 분리수거 하셨나요?"

카페 쓰레기 분리수거 '고객vs 직원' 갑론을박 / 카페에 음식물부터 기저귀까지 놓고 가는 경우도
지난 4월 오후 합정역 인근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의 쓰레기 처리함 위에 커피를 담았던 컵을 비롯한 각종 쓰레기가 올려져 있다.

지난 1일 낮 12시30분쯤 서울 광화문역 인근의 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는 커피를 마시러 온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삼삼오오 쓰레기와 커피를 담았던 종이컵을 들고 쓰레기 처리함으로 향했다. 이들은 쓰레기 처리함 위에 컵과 구겨진 영수증 등 쓰레기를 올려놓고 발걸음을 재촉해 카페를 빠져나갔다. 카페에서 구입하지 않은 과자의 포장 비닐과 음식물 등을 함께 버려두고 간 이도 더러 있었다. 

카페는 쓰레기 처리함에 ‘일반 쓰레기’, ‘남은 음료’, ‘사용한 컵’이라고 적힌 팻말을 설치, 분리 수거를 유도했으나 수북하게 쌓인 쓰레기들로 이런 노력은 무색해지고 말았다. 

이에 아르바이트생들은 번잡한 시간대 음료 제조는 물론이고 쓰레기까지 치우느라 정신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고객이 직접 음료를 받아가야 하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6곳을 상대로 쓰레기 처리 원칙을 확인한 결과 중 5곳은 “손님이 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즉 고객이 음료를 직접 가져오는 것처럼 치우는 것 역시 스스로 쓰레기 처리함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논란이 됐던 한 카페 쓰레기 수거함의 사진. 그릇과 함께 다 쓴 기저귀가 놓여 있다.

◆음식물부터 기저귀까지 닥치는 대로 쌓이는 카페 쓰레기 

올해부터 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파트타임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유모(25)씨는 “손님이 한창 몰리는 점심시간이나 저녁 시간을 보면 가관”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유씨는 “재활용을 할 수 있도록 별도 공간까지 마련해 놨으나 의미가 없다”며 “음료를 버리는 곳과 컵을 버리는 공간까지 다른 쓰레기로 채워지는 일까지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남은 음료수나 음식물 등을 일반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그 위에 쌓아둬 악취가 나는 일도 적지 않다”며 “쓰레기가 쌓이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주문을 받다가 고객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모(22)씨는 “카페에서 산 것 외 다른 쓰레기를 치우지도 않고 버리고 가는 이들도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김씨는 “지난번에는 대학생 무리가 와서 포스터 같은 것을 제작하더니 종이와 커다란 하드보드지 등을 탁자 위에 그대로 놓고 갔다”며 “강력접착제를 사용했는지 테이블 여기저기에 접착제가 진득하게 굳어 있었고, 종이와 지우개 가루도 사방팔방에 가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전 시간을 담당하는 아르바이트 친구에게 들었는데, 한두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온 여성들이 다녀간 뒤 컵을 버려야 하는 자리에 떡 하니 기저귀가 놓여 있어 황당했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이는 비단 유씨나 김씨만의 고충은 아니다. 최근 한 취업 포탈 사이트에서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집계한 설문조사에서는 이른바 '진상' 손님 중 최악의 유형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는 이’(15.9%)가 꼽히기도 했다. 
지난달 서울 양천구 인근의 한 프랜차이즈카페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쓰레기 처리함 탁자 위에 놓인 컵들과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다.

◆고객 "쓰레기 처리는 아르바이트생 몫"

카페 관계자들은 이처럼 고객의 ‘셀프 분리수거’를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쓰레기 처리함은 물론이고 일반 탁자 위에도 매일같이 한가득 쌓인다고 주장한다. 

고객들도 먹던 탁자에 쓰레기를 놓고 나가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여기거나 아르바이트생이 치우는 줄 알았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모(27)씨는 “예전에 쓰레기를 버리려 했더니 아르바이트생이 쓰레기 처리함 위에 그냥 놔두고 가라고 했었다”며 “이후 습관이 돼 쓰레기와 쟁반 등을 위에 놔두고 가게를 나선다”고 밝혔다.

직장인 최모(34)씨는 “1시간 남짓 되는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기도 빠듯한데, 정신없이 카페에서 나오다 보면 쓰레기를 올려놓고 나올 수도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어 “카페 아르바이트생들이 해야 하는 업무 중 하나가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나 자리정리가 아니냐”며 쓰레기 재활용을 고객에게 떠넘기는 카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던 한 카페의 알림판. '기저귀 제발 넣지 말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카페 쓰레기 분리수거, 누구의 몫일까

서울 중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홍윤아(41)씨는 “매장 아르바이트생들의 주요 업무는 커피를 제조하거나 주문을 받는 것”이라며 “최근에는 외국인 손님까지 매장에 쓰레기를 쌓아두고 가는 일이 잦다”고 전했다. 

홍씨는 할 수 없이 쓰레기 처리함 위에 쌓을 수 없도록 쓰레기를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을 좁혔다고 한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회사의 홍보팀 관계자 역시 “프랜차이즈 카페를 마치 패밀리 레스토랑과 같은 시스템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바쁘고 귀찮겠지만 마시고 남은 음료는 ‘남은 음료’ 공간에, 컵은 별도 분리대에 재활용해주면 감사하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글·사진=김지현 기자 becreative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