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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집 떠나와 기차타고~"… 군생활 애환 노래로 들어볼까

 
지난 1월 논산훈련소를 통해 입대하는 청년들이 가족들과 헤어져 훈련소로 향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병역을 국민의 의무로 규정하는 우리나라에서 군 복무는 피해가기 어려운 운명에 가까운 일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지만,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인 20대 초반을 사회와 격리된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병사들에게는 젊음을 박탈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군 입대를 앞둔 예비 군인들이 눈에 띄게 짧아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며 한숨을 쉬기도 하고, 밀려드는 막막함과 두려움에 술을 마시며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이 때 위안이 되는 것이 노래다. 마음을 담은 노래는 온갖 표현을 사용한 위로의 말보다 더 강한 효과를 낸다. 구슬픈 발라드나 즐거운 댄스 음악, 아이돌 노래도 도움이 되지만 군 입대를 눈앞에 둔 심정이나 군 생활의 애환을 담은 대중가요는 소재의 특성상 감정이입이 훨씬 강할 수밖에 없다.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단결력을 키워주는 군가와는 그 역할이 다르지만 군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노래이며, 군복무를 마친 예비역들에게는 군생활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역할을 한다.

◆ 병영과 사회가 하나였던 시대의 노래들

2015년 11월24일 레바논 파병 동명부대 17진 환송행사에서 한 동명부대 장병이 어머니께 키스를 하고 있다. 육군 제공
2015년 11월3일 아랍에미리트 파병 아크부대 10진 환송식에서 한 장병의 어머니가 아들을 껴안아주고 있다. 육군 제공
6.25 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병영과 사회를 구분할 수 없는 군사국가였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군사훈련인 교련이 실시되기도 했다. 정부의 핵심 권력을 군인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북한의 침공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사회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군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시대였다.

특히 발매되는 가요앨범에 군가가 꼭 포함되는 시기였던 1970년대에는 대중문화계도 군인의 일상생활보다는 ‘멋진 군인’ ‘애국심 넘치는 군인’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철없던 사람이 군대 갔다오니 달라졌다’는 식의 서사구조를 갖춘 대중가요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힘든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가면 모두가 환영하고 이성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의 대표적인 사례가 1969년 발표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다. 당시 신인 가수였던 김추자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 노래는 “말썽 많은 김총각 모두 말을 했지만 의젓하게 훈장 달고 돌아온 김상사 / (중략) / 폼을 내는 김상사 돌아온 김상사 내 맘에 들었어요 / 믿음직한 김상사 돌아온 김상사 내 맘에 들었어요”라며 군복무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군인의 비장함을 묘사한 노래도 있다. 1972년 조영남이 불렀던<점이>는 고향에 어머니와 연인을 둔 채 휴전선에서 군복무 중인 병사의 심정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이 목숨 바치면 이 목숨 바치면 조국의 영광이 있으리니”라는 후렴구를 통해 국가안보를 위한 희생정신을 강조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과 군인을 엄숙하게 묘사한 노래인데도 젊은 남녀의 사랑과 그리움, 애절함과 같은 감정이 섞여있다는 점이다.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채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당한 당시 병영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잘 아는 입대 직전의 감정을 묘사한 노래로는 1978년 최백호가 만든 <입영전야>가 있다. 자신의 입영 전날 기분을 떠올리며 만든 <입영전야>는 헤어짐의 아쉬움을 느끼며 우정을 확인하는 가운데 비장한 각오의 군복무를 잘 표현해냈다. 애국심 넘치고 근엄한 이미지의 군인은 <입영전야>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로 바뀌었다. 입영 노래의 시초로 평가받는 이 노래는 1980년대 후반까지 청년들이 모이는 선술집에서는 언제나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선술집에서 군 입대를 앞둔 남자들은 술을 마시고 목청을 높여가며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 ‘입대에 대한 감정’ 묘사로 옮겨간 노래들

입대를 위해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향했던 기억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번쯤을 갖고 있는 추억이기도 하다
<입영전야>에서 시작된 군 입대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묘사하는 노래는 1990년대에 들어 큰 인기를 끌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군사문화의 위세가 사회 전반에서 쇠퇴하기 시작함에 따라 군에 대한 노래 역시 개인의 감정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1990년 김민우가 발표한 <입영열차 안에서>는 발라드 특유의 감성인 사랑과 이별에 군 입대라는 프레임을 씌운 노래다. 노래 속에서 입대를 앞둔 남자는 입영열차에 탑승한다. 남겨두고 온 연인에 대한 그리움, 초조함이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친다. 아직 헤어지지는 않았지만 만나는 것도, 통화를 하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를 생각하면 그런 감정은 더욱 강해진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댄 나를 잊을까. 기다리지 말라고 한 건 미안했기 때문이야” “어느 날 그대 편지를 받는다면 며칠 동안 나는 잠도 못 자겠지” “이런 생각만으로 눈물 떨구네. 내 손에 꼭 쥔 그대 사진 위로.” 이 노래는 발매 당시 오랜 기간 동안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다. 입대를 앞둔 청년에게는 감정이입을, 예비역에게는 공감을, 연인에게는 슬픔을 느끼게 했던 <입영열차 안에서>는 지금도 군 입대 관련 노래 중 최고봉으로 손꼽힌다. 1995년 발표된 이장우의 <훈련소로 가는 길>도 이와 비슷한 감성을 담았다.

1993년 김광석이 리메이크했던 <이등병의 편지>는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과 그 가족들을 슬프게 하는 노래다. 김광석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슬픈 선율과 잘 어울리는 명곡이지만 군복무를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실하게 와닿는 가사 때문에 듣다가도 울컥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정작 노래방에서는 부르기 꺼려하는 노래로 꼽히기도 했다. 기자도 2002년 입대를 위해 춘천 102보충대로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라는 구절을 듣고 그 길로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등병의 편지>는 북한에서도 ‘떠나는 날의 맹세’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보다 군복무기간이 훨씬 긴데다 입대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북한군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 노래가 가져다주는 감정의 강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해병대에 입대하는 청년들이 가족들과 헤어지기 전 가족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도 각광받았다. MBC가 1989~1997년까지 방영했던 <우정의 무대>는 군인들을 위문하는 프로그램으로 많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았다. 김완선 등 당대 최고의 여가수들이 대거 출연하기도 했던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어머니와 병사의 만남을 주선하는 ‘그리운 어머니’ 코너였다. 고된 군생활로 매일 밤 군용모포를 눈물과 식은땀으로 적시던 그 시절,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던 그 시절을 위로해주던 것은 ‘그리운 어머니’ 코너의 시그널송이었다.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놓고,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어요. 울고도 싶어요. 사랑하는 내 어머니.” 이 노래가 끝나면 병사들의 얼굴은 말 그대로 눈물범벅이 됐다. 진행자인 이상용이 “오늘 오신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라 확신하는 병사는 앞으로 나와주세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많은 병사들이 무대로 올라갔고, “뒤에 계신 어머니가 제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병사들의 사연에 시청자들은 함께 울고 웃었다.

군대에 대한 노래는 2000년대에서도 계속 등장했다. 자두가 2000년 발표한 <사나이 가는 길>은 애인을 군대에 보낸 여자가 사랑을 재확인하며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이 당시부터 사회적으로 유행하던 곰신(남자친구를 군대 보낸 여자)의 심정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노다인이 2013년 발표한 <파인>은 입대 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부터 훈련소로 갈 때까지의 심정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같은해 포스트맨이 부른 <고무신 거꾸로 신지마>는 입대하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는 노래로 입대하는 청년이 가장 가슴아파하는 순간을 잘 담아냈다. 이승기가 2016년 입대를 발표하면서 내놓은 <나 군대 간다>는 이승기의 입대시기와 맞물려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등병의 편지> 이후 군대를 소재로 한 노래는 국민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던 군사문화의 잔재가 많이 사라지고 있고, 의사소통 수단이 발달하면서 군대와 사회의 단절 현상도 점진적으로 해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중대장과 병사 부모가 대화를 나누고, 부대 개방행사가 주기적으로 열리는 현실에서 군대 생활의 고단함을 강조하는 노래가 관심을 얻기는 힘들다. 하지만 국가를 지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병영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청춘들의 희생은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병역이 의무인 시대가 지속되는 한 군대 생활을 배경하는 노래는 계속 대중문화의 일부로 남을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