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강경화 능력부족?' 정치권 공세에 외교가 반박 쏟아내

정치권에서 강경화 외교장관 후보자의 ‘능력 부족’을 문제삼자 외교가의 전·현직 관료·전문가·노동조합이 한목소리로 반박하고 나섰다. 정치권과 외교가가 정면으로 맞서는 이례적인 광경이다.

전직 외교장관 10명이 강 후보자 임명을 촉구하는 성명을 국회에 제출한 것을 놓고 외교가에서는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전직 장관 2명 이상이 공동 성명을 내는 것은 외교부 생활에서 처음 본다”며 “헌정 이래 처음인 것 같다”고 11일 말했다.

전날 한승주·공로명·유종하·이정빈·한승수·최성홍·윤영관·송민순·유명환·김성환 등 전직 외교장관 10명이 공동 성명을 내고 “강 후보자는 오랜 유엔 고위직 근무와 외교활동을 통해 이미 국제사회에서 검증된 인사로 주변 4강 외교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당면한 제반 외교사안을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밝혔다. 생존해 있고 소통가능한 건강상태의 전·현직 장관 중 현직인 윤병세 장관, 반기문 전 장관을 제외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의 모든 인사가 이름을 올렸다.

또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유엔무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문제도 국제공조를 통해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궁극적으로 창의적인 해법을 모색해 나갈 역량과 자질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간 제기됐던 북핵·한반도 주변 4강과의 양자외교 경험이 없다는 비판, “도덕적 흠결을 만회할 업무 능력을 찾지 못했다”는 야당 입장을 정면 반박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간 북핵 ‘올인’ 외교를 지난 박근혜 정부 외교 실패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아왔다. 국제기구나 다자틀을 이용한 북핵문제 해결 등 새로운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직 장관들을 지적도 이같은 논의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일부 야당에서 ‘도덕적 흠결을 만회할 만한 업무능력이 발견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강 후보자를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논평했다.

정 실장은 “야당은 북핵 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강 후보자가 장관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외교부 장관직은 북핵 문제만을 다루는 자리가 아니고 전세계를 상대로 외교를 수행해야 하는 직책”이라며 “과거에도 북핵 문제와 관련한 외교의 방향은 기본적으로 청와대에서 결정했지 외교부 장관이 독자적으로 결정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요 결정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강 후보자의 유엔에서의 경험과 인맥은 오히려 북핵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전달하는데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몇몇 국내 현안 질문에 즉답을 못했다고 해서 강 후보자가 해당 이슈에 무지하거나 능력이 없다고 보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해외입시와 국내입시가 다르듯이 국내에서 관료로만 큰 사람과 국제무대에서 몸소 현장경험을 하며 큰 사람을 똑같은 방식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가장 최근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유엔 안보리 회의장에도 강 후보자가 당시 유엔 사무총장 특보자격으로 굳이 와서 참관했었다”며 “강 후보자는 임명되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외교를 빛낼 사람이라고 본다”고 했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강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일부 청문위원들의 태도에도 불쾌감을 느꼈다는 반응이 많다. 청문회가 시작되자마자 관례에 따라 배석했던 당국자들을 향해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이 돌연 호통을 치며 내보냈던 것을 두고는 여성 혼자서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이용하며 노골적으로 강 후보자를 깎아내리려 했던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이 ‘나를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설득해보라’며 상황극을 요구했을 때에도 헛움음이 터져나오는가 하면, “강 후보자가 차라리 영어로 답을 해줬어야 한다”는 우스개소리까지 회자된다.

지난 7일 공무원노조 외교부 지부는 성명을 내고 “우리 외교부는 최근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잇단 외교문제 갈등으로 집단 무기력에 빠져있는 상황으로, 외교부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당당하게 외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앞에서 이끌어줄 리더와 우리 외교의 패러다임과 문화를 변화시킬 중요한 계기가 필요하다”며 “그 적임자가 강 후보자”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 후보자 청문회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부의 구성원들과 전문가, 전직 장관이 동시에 장관 후보자를 공개지지하는 이같은 상황과 유사한 사례를 외교가에서는 찾기 힘들다. 외교가에서는 ‘외교·안보에는 좌우가 없다’는 말이 불문율로 통한다. 이때문에 야당의 존재감 확보를 위한 강경화 낙마 공세에 강한 거부감이 표출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