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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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투기장 전락한 ‘도심의 허파’ …여의도 178배 사라진다

도시공원 일몰제 논란 / 정부, 934㎢ 지정… 사유지 매입해 조성 / 10년 이상 미집행 공원 면적 55% 달해 / 3년 내 조치 못 취하면 사실상 이용불가 / 민간, 공원 조성 땐 잔여부지 아파트 허용 / 지자체, 선정 방식 제각각… 소송 휘말려 / 건설사 “공모 떨어져도 차익” 매입 전쟁
“솔직히 말해 답이 없습니다.” 지난달 28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주최로 열린 ‘민간공원개발 위기인가, 기회인가’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조진상 동신대 교수는 “도시공원의 일몰제가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심숲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는 전국의 장기미집행 도시공원은 여의도 면적(2.9㎢)의 178배, 서울시 면적(605.21㎢)의 85배가 넘는다. 도심의 산소 공급처인 이들 도시공원이 오는 2020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정부와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부랴부랴 민간개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공원 난개발이라는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자체의 민간개발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이미 공원 부지는 투기장으로 전락하고, 곳곳에서 소송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그동안 도시공원으로 지정돼 도시숲의 허파 역할을 해온 광주 서구 마륵공원이 2020년 7월 해제를 앞두고 민간공원특례사업으로 개발된다. 사진은 항공 촬영한 마륵공원.
광주시 제공
◆지자체 선정 방식 제각각… 곳곳서 소송·잡음

정부가 도시공원으로 지정한 면적은 2015년 말 기준으로 934㎢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들 공원 부지 내의 사유지를 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10년 이상 장기간 매입하지 못한 채 공원으로 지정된 미집행 면적은 516㎢로 55.2%에 달한다. 법적으로는 사유지이지만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3년 후인 2020년부터는 이들 장기미집행 도시공원을 더 이상 공원으로 묶어둘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1999년 10월 ‘도시공원이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며 사실상 위헌인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헌재는 20년간 유예기간을 두고 2020년 7월1일부터는 정부나 지자체가 도시공원을 매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전국의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의 조성 사업비는 39조원으로 추정된다. 공원 부지를 살 돈이 없는 정부와 지자체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토교통부는 2015년 민간이 도시공원을 개발하는 민간공원특례사업 카드를 내놓았다. 민간사업자가 70% 이상을 공원으로 조성한 뒤 기부채납하고, 나머지 30% 미만에 아파트와 상가 등을 건립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5만㎡ 이상의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이 대상이다.
전국 9개 지역 300여 환경·시민단체가 모인 `2020 도시공원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가칭)` 회원들이 지난 4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도시공원일몰제`로 도시공원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그러나 지자체가 민간공원특례사업의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방식과 기준이 서로 달라 곳곳에서 특혜시비와 소송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 1월 송도 2공원의 민간특례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A건설사를 선정했다. 그런데 2위를 한 B건설사가 평가표의 ‘입찰 자격제한 징계’ 점수를 문제 삼아 이의를 제기했다. 평가표에는 최근 3년간 한 번도 징계를 받지 않은 업체에 5점, 3회 이상 징계를 받은 업체에 0점을 주도록 돼 있다. A건설사와 B건설사는 이 기간에 각각 8차례, 1차례 징계를 받았지만 2015년 특별사면을 받아 징계현황 항목에는 ‘해당사항 없음’으로 기재했다. 인천시는 특별사면을 받았어도 징계 자체가 소멸되지 않는다며 B건설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자자체는 사업자 선정공고 내용이 특정업체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특혜시비에 휘말리다가 수정공고나 재공고를 내 빈축을 사고 있다. 경남 창원시는 지난 6월 민간사업자모집 수정공고를 했다. 재무구조 평가항목의 자기자본비율과 유동비율을 애초 상대평가에서 조달청에서 제시하는 평균자기자본비율(35%)을 기준으로 바꾼 것이다. 재무구조를 상대평가할 경우 주택사업을 주로 하는 지역의 건설업체가 1군 건설업체보다 당락을 결정하는 5점 정도의 차이를 보여 특혜시비가 제기됐다. 광주광역시도 공고를 낸 지 한 달 만인 지난 5월 참여조건을 정정하는 공고를 냈다. 애초 공고된 4개 공원 중 1개 업체가 1개 공원에 한해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한 업체가 4개 모든 공원을 싹쓸이한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돌았다”며 “이런 특혜 소문보다는 한 업체가 1조원이 넘는 재정을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돼 수정했다”고 밝혔다.
◆땅 투기장 전락… 공원조성 평가 점수는 미미


광주시가 민간공원 특례사업으로 내놓은 남구 송암공원의 소유주들은 요즘 땅을 사겠다는 부동산 업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모씨는 “감정평가 가격보다 높은 값을 제시해 지금 파는 게 이득이 될 것인지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과 주거 입지가 좋아 건설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광주 서구 마륵공원의 땅 가격은 평소보다 3배가량 올랐다.

광주시 1차 민간공원 특례사업 예정지 4곳은 모두 때 아닌 땅 매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공원부지로 묶인 이후 지난 17년간 조용하던 이들 공원부지가 자고 나면 오르면서 땅 투기장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공원부지가 땅 투기장으로 전락한 데는 광주시의 사업자 선정 방식에서 비롯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광주시는 사업의 안정성 측면에서 평가항목에 사업자의 토지확보 면적을 포함했다. 토지확보 평가점수 차이는 최대 2점으로 당락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평가항목은 건설사들의 비업무용 토지 매입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건설사들은 설령 공모에 탈락해도 향후 매입가보다 높은 보상가격을 받게 돼 매매차익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공원조성 계획보다는 사업의 안정성에 무게를 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평가 배점을 보면 공원조성 관련 항목은 10개에 달하지만 1개 항목당 차이는 0.05점이다. 이 때문에 모든 항목에서 만점을 맞아도 차순위와는 0.5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당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면에 사업자의 재무구조나 경영상태 등의 배점 차이는 5점 이상으로 높다. 조동범 전남대 교수(조경학)는 “사업자 선정 평가 항목의 초점이 공원을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맞춰져야 한다”며 “그런데도 지자체는 재무나 경영이 양호한 업체 선정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