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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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돈보따리’ 이면에 군사굴기…시진핑, 거침없는 ‘일대일로’

육·해상 실크로드 확장… 경제협력 명분 中 군사패권 야심/ 유라시아 ‘물류 로드’ 속도전 / ‘진주목걸이’ 바닷길도 순항 / ‘돈보따리’ 이면에 군사굴기 / 각국서 커지는 우려 목소리
중국이 국가전략으로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중국 굴기’(堀起)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철도를 연결하고, 아덴만과 인도양 뱃길을 개척하는 등 동남아와 중동, 유럽, 아프리카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대일로 관련 국가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 고속철도와 항구 등 거점 인프라 확보에 나서면서 일대일로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일대일로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만만찮다. 미국 등 서방세계는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인도도 주변 지역 인프라 확충에 나서는 등 일대일로 대응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 동남아·중앙아 진출… 육상 실크로드 확대

‘일대일로’는 말 그대로 육상·해상 실크로드 복원 전략이다. ‘일대’(一帶)는 대체로 중국에서 중앙아를 거쳐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육상 실크로드를 의미한다. ‘일로’(一路)는 남중국해와 인도양, 아라비아해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뜻한다.

중국은 육상 실크로드 복원을 위해 고속철 건설, 석유·가스 파이프라인 연결, 거점지역 공략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중앙아와 유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태국 정부의 고속철도 사업 승인으로 동남아 전역에서 일대일로 구상이 탄력을 받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태국 정부가 지난달 10일 52억달러(약 6조원) 규모의 고속철도 1단계 사업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1단계 사업은 전체 계획 구간(850㎞)의 3분의 1 정도인 250㎞로 수도 방콕을 시작으로 북동부 나콘라차시마를 잇는 구간 사업이다. 남서부 윈난성을 통해 라오스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이어지는 교통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교두보가 마련된 것이다.

중국은 또 헝가리와 세르비아 간 고속철 건설을 추진 중이다. 중앙아와 중동을 거쳐 동유럽과 서유럽으로 이어지는 화물열차 노선은 이미 지난해 정례화했고, 해상 무역로 개척과 맞물린 동남아, 중동 지역은 신규 철도 및 고속철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석유·가스 파이프라인 네트워크 부문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간 송유관 및 가스관 건설, 중국과 중앙아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중국과 카자흐스탄 송유관, 중국과 미얀마 가스관 및 송유관 건설 공사는 완공됐다.

중국은 특히 유럽 공략을 위해 세르비아를 거점 지역으로 삼고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난해 6월 국빈방문해 20여개의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중국 기업들은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다뉴브강 대교 건설 및 발전소 재개발 프로젝트, 베오그라드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잇는 고속철 건설 사업에 착수했다. 현재까지 세르비아에 투자된 중국 자본은 55억유로(약 7조2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주목걸이’ 전략… 해상 실크로대 확대


중국은 ‘진주목걸이’ 전략을 통해 해상 실크로드 확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남아시아 패자인 인도의 해안을 빙 둘러싸 인도를 무력화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인도양 연안 국가를 해상 운송의 요충지로 삼고 전략적 요충지 곳곳에 항만 운영권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중국은 특히 인도양의 관문인 스리랑카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일대일로 정책에서 해상 실크로드의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한다. 환구시보(環球時報) 등 중국 언론은 최근 중국이 스리랑카 항만 운영권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스리랑카 항만공사는 중국 국영 항만기업 자오상쥐(招商局)로부터 11억2000만달러(1조2600억원)를 받고 앞으로 99년간 함반토타항 운영권을 이전키로 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중국은 함반토타 항구 운영권뿐만 아니라 현재 스리랑카 콜롬보항 개발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초입에 있는 파키스탄 과다르에도 장기임차 방식으로 자국 무역항을 확보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기업들이 최근 1년간 전 세계 주요 항만을 인수·합병(M&A)하거나 투자하기로 한 금액이 201억달러(약 22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는 직전 1년(99억7000만달러)의 2배를 뛰어넘는 금액”이라며 “현재 논의 중인 투자도 있어 실제 금액은 이보다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대일로 본격화… 군대도 따라간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주변국과의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군사적 영향력 확대도 꾀하고 있다. 중국 해군은 최근 동부 아프리카 전략 요충지인 지부티에 첫 해외 군사기지를 건설했고, 러시아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대치 지역인 발트해, 미국과 호주의 연합훈련지인 호주 동북부 해역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며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말 일대일로 정책의 중요 파트너인 파키스탄의 과다르항 운영권을 확보한 뒤 해상무역 보호를 명분으로 해군 군함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25일 사설에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은 중국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에 발맞춰 점차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상의 중국의 군사굴기를 분명히 한 것이다. 중국이 경제권 보호와 항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군사활동 범위를 확대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 군사전문가 쑹중핑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군사협력이 일대일로를 중심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며 “중국은 파트너들과의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군사력을 투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대일로의 함정… 중국굴기를 보는 우려의 시선


미국 등 서방 세계는 일대일로를 중국식 패권 행보로 보고 있다. 일대일로 정책이 중국의 주장대로 공동 번영이 아닌 중국의 일방적인 이익과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경제전략연구소(ESI) 클라이드 프레스토비츠 대표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일대일로는 중국의 과잉생산 능력을 처리하는 방법이며, 중국 내 투자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국의 영향권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에서 서방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실제로 중국은 대규모 투자를 명분으로 동남아와 중앙아, 중동 지역에서 거점을 확보하고 이를 통로로 경제적 영향력뿐만 아니라 군사적 영향력도 확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이런 행보는 서방세계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에게도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당장 남아시아의 대국 인도가 발끈하고 나섰다. 중국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하나로 잇는 일대일로가 남아시아와 인도양에서의 인도의 지위를 위협한다는 판단에서다. 인도가 최근 국경 주변 인프라 투자를 강화하는 것도 이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인도 정부는 국경 지역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2억5600만달러 투자를 승인했다. 북동부 인도와 태국 및 동남아 시장을 연결할 1360km에 달하는 고속도로 건설은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의 중국과 인도의 영향력 확대 경쟁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통신은 지적했다.

일대일로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많다. 중국은 2013년 일대일로 계획을 발표하면서 아시아, 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잇는 광대한 물류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1000억달러(112조3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가운데 900억달러 이상이 아프리카의 에피오피아와 케냐, 인도양의 스리랑카 같은 같은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은 나라에 투자됐다. 투자한 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관련국들과 중국의 핵심이익이 충돌할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불분명하다.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산하 중국연구소의 스티브 창 소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관련국들과 핵심이익이 충돌할 때 어떻게 이견을 해소할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중앙아나 동남아 등 국가들과 핵심이익이 충돌할 때 중국이 핵심이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