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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지구의 미래] 뉴욕 다녀오셨나요? 당신의 탄소 배출량은 1.1t입니다

항공기는 ‘온실가스 하늘 공장’… 서울~뉴욕 1인 탄소 배출 1.1t / ‘움직이는 타깃’ 항공기 탄소 저감 대책 어디까지 왔나 / 하늘에 남긴 ‘탄소 발자국’ 얼마나 / 온실가스 난제풀기 앞서가는 유럽 / 저탄소까지 머나먼 길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897.23㎏입니다.’ 지난주 벨기에로 출장을 다녀온 기자의 이티켓(전자항공권)에는 이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무리 항공기의 탄소 배출량이 많기로서니 설마 한 사람이 1t에 가까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게 말이 되는가 싶어 이 구간 항공유 소모량(약 150∼200t)에 항공유의 이산화탄소배출 계수(1t당 3.16)를 곱한 뒤 탑승객 수(300∼400명)로 나눠봤다. 897㎏은 영 터무니없는 수치가 아니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역대 가장 길었던 지난 추석 연휴 기간(지난달 29일∼9일) 외국을 찾은 출국객은 100만명에 이른다. 100만명이 하늘에 남긴 탄소 발자국은 얼마나 될까. 한국관광공사의 과거 출국 통계를 토대로 ‘황금 연휴’의 ‘회색빛 이면’을 들여다봤다.

◆뉴욕에 다녀오셨나요? 당신의 배출량은 1.1t입니다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홈페이지를 통해 노선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노선별 평균 화물적재 및 정원 대비 탑승 비율, 연료 소모량 등을 바탕으로 한 평균값이다.

당연한 이치겠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비행 거리가 멀수록 늘어난다. 서울(인천)에서 중국 베이징까지 1인당 배출량(이하 왕복 기준)은 170.7㎏이고, 일본 도쿄(하네다)까지는 209.6㎏이다. 비행거리가 3000㎞가 넘는 태국 방콕(돈므앙)은 453.8㎏, 프랑스 파리 845.4㎏, 호주 시드니 1033.8㎏, 미국 뉴욕까지는 1100㎏이나 된다.

우리나라 출국객이 어느 나라를 찾았는지는 2006년 출국카드가 폐지된 후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출국 심사를 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역시 ‘구체적인 자료는 취합하지 않는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우회적인 방법으로 한국관광공사는 외국 각 기관이 작성한 입국자 통계를 기초로 출국객의 행선지를 조사하고 있다.

관광공사가 작성한 기록을 보면 2014년부터 지난 3년간 추석 연휴가 든 9월의 경우 중국을 찾은 이들이 26%로 가장 많고 이어 일본 20%, 미국 9%로 3국이 과반을 차지했다. 나머지는 동남아와 유럽국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연휴 기간 탄소배출량을 계산하면 미·중·일 3국 왕복 구간에서만 어림잡아 18만여t 정도가 배출됐을 것으로 보인다. 승용차 6만여대가 1년간 뿜어내는 온실가스에 맞먹는 양이다. 기타 노선까지 포함하면 수십만t에 이른다.


◆2050년 5∼7배로… 이번에도 유럽이 ‘해결사’로 나설까

현재 항공분야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총 배출량의 2% 정도다. 당장은 큰 비중이 아니지만 문제는 에너지, 폐기물, 산업공정 등 다른 분야와 달리 항공 배출은 기술적·정치적인 이유로 감축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항공분야 배출량은 매년 3∼4%의 증가율로 2050년이면 지금보다 3배에서 최고 7배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일찌감치 항공 온실가스 문제 해결에 뛰어든 건 유럽연합(EU)이다. EU는 2000년대 초반 ICAO에 적절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독자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명문화했다. 2006년에는 28개 EU 회원국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의 공항에 도착하거나 여기서 출발하는 항공기를 EU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TS)에 편입하기로 한다. ETS란 각 기업이 할당받은 권리(배출량)를 사고팔 수 있게 한 것으로, 할당량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돈을 주고 배출권을 사와야 한다.

EU의 항공분야 배출권거래 적용 방침은 국제적인 반발을 불렀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이 불복종 연합을 결성하는가 하면 중국은 유럽 항공기 제작사인 에어버스와 체결한 항공기 55대 구매계약(260억달러 규모)을 지연시켰다. 결국 EU는 유럽 권역 안에서 오가는 비행기에 대해서만 ETS를 적용하기로 한발 물러섰다.

그렇지만 ICAO 역시 계속 환경 이슈에 눈감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난해 ICAO는 2019∼2020년 항공분야 평균 배출량을 기준으로 잡고, 2021년부터 초과 배출할 경우 그만큼을 상쇄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EU는 향후 ICAO의 구체적인 이행방안 논의 과정을 지켜본 뒤 내년쯤 EU 권역에 뜨고 내리는 모든 항공편을 ETS에 편입할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2015년 ETS 시장이 열린 우리나라에서는 국내선 국적기에 한해 ETS에 들어와 있다. 그런데 아직 1기 시장(2015∼2017년)이 마무리되지 않았음에도 일부 항공사는 할당된 배출량을 이미 다 쓰고 13억원어치의 탄소 배출권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날개 모양부터 운항까지 ‘탄소 다이어트’… 획기적인 저감까진 먼 길

사실 항공사와 비행기 제작사 입장에서도 저탄소는 중요한 이슈다. 비단 환경보호만이 아니라 회사 이익에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항공사 비용 가운데 유류비는 가장 비중이 높은 지출 항목이다. 양대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경우 유류비는 운영비의 32∼37%를 차지한다.

비행기 날개 끝을 관심 있게 본 적이 있다면 기종마다 모양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챘을 것이다. 이는 연료 효율과 관계 있다.

에어버스 A320의 경우 날개 끝이 상어 등지느러미처럼 날렵하게 위로 꺾인 ‘샤크렛’ 모양이고 보잉사 보잉747 중에는 날개 끝이 뒤로 꺾인 ‘레이키드 윙팁’이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런 날개 모양은 공기저항을 높이는 와류 현상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으로, 샤크렛과 레이키드 윙팁은 각각 4%, 6%의 연료효율 개선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엔진 물세척을 자주 한다거나 계단식 하강 대신 최적의 각도를 따라 착륙하는 방식(연속강하접근·CDA), 혹은 활주로에서 전기로 비행기를 이동시키는 ‘일렉트릭 택싱’ 등도 고안됐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모두 동원하더라도 실제 온실가스 저감 효과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한국기후변화연구원 유종익 박사는 “ICAO도 비행기 제작기술이나 운항방법만 가지고는 2050년 저감 목표치의 40%밖에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 평가한다”며 “60%는 바이오항공유나 배출권 거래로 접근해야 한다”고 전했다. 온실가스 배출 원인인 항공유 자체를 다른 연료로 전환하거나 아예 배출권 거래 같은 우회 경로가 현실적이란 뜻이다.

바이오항공유는 식물이나 폐식용유로 만드는데, 엄밀히 말하면 탄소배출이 ‘제로’라기보다는 ‘추가 배출량’이 없다고 이해하면 된다. 어차피 식물은 자연스럽게 썩든, 연료로 만들어 태우든 탄소 배출을 하기는 마찬가지이므로 썩어 없어질 식물로 바이오항공유를 만들면 적어도 추가 탄소 배출은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일반 항공유보다 최고 5배 정도 비싸 우리나라 항공사는 쓰지 않는다. KLM 네덜란드항공, 유나이티드 에어, 루프트한자 등은 5∼30%의 비율로 바이오항공유를 섞어 쓰는데, 공항이용료를 깎아주는 방식으로 바이오항공유 이용을 유도하고 있다.

전기나 태양광으로 나는 진정한 의미의 ‘녹색 비행’은 불가능할까.

유 박사는 “전기 자동차도 이제 겨우 1회 충전해 200∼300㎞를 가는데, 상용 전기 비행기는 아직은 너무 먼 이야기”라며 “지금은 현실적인 대안부터 고민할 때”라고 전했다.

※기사 가운데 ‘항공분야 배출권 거래제’ 관련 내용은 책 ‘세계를 선도하는 EU의 기후정책’(이승환 저, 2016) 참조.

브뤼셀=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