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서 이탈리아 노조 관계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30%가 넘는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률 탓에 가정을 꾸릴 기회가 줄어 종교의 위기를 느꼈을 법하다. 세계 각국이 다양한 이슈로 내홍이나 외교 분쟁을 겪고 있지만, 일자리 문제에서는 입장이 비슷하다. 주요 지도자들의 최근 일자리 관련 행보를 살펴봤다.
지난달 독일 총선에서 승리해 4연임을 확정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최근 일자리 고민에 밤잠을 설쳤을 듯싶다. 독일은 2015년 난민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메르켈 총리는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다행히 유럽 전체가 같은 문제로 몸살을 앓은 탓에 난민 수를 제한하되 상한은 정하지 않기로 합의, 명분은 살리고 난민 정책을 강화해 비판을 헤쳐나갔다.
독일 자동차 업체들이 엔진을 조작해 오염물질 배출 정도를 속인 ‘디젤 게이트’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유지한 것도 일자리 탓이다. 그는 총선에서 독일차 경영진을 작심하고 비판했지만 디젤차 퇴출을 언급하진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2040년까지 내연기관 엔진을 금지하기로 했지만, ‘2020년까지 전기차 100만대 보급’이라는 기존 정책만 재확인했다. dpa통신은 “독일 자동차산업은 90만개가량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내총생산(GDP)의 약 20%를 차지한다”고 배경을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광산·에너지 노조(IG BCE) 총회에서 탈(脫)석탄화를 신중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까지 탈원전을 선언하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석탄화력은 전체 발전량의 40%가량이다.
난민 유입이 늘고 실업률이 증가한 유럽 각국의 선거에서 ‘난민과 불법이민자를 몰아내고 일자리를 지키자’고 주장하는 정당이 득세하고 있다.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총선에서 제3당이 돼 의회에 입성한 게 대표적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논의가 지지부진한 점에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골치 아픈 리더에 속한다. EU와 전분야 동맹을 청산하는 ‘하드 브렉시트’에 이르면 영국 내 일자리 52만여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보고서까지 나왔다. EU 27개 회원국도 120만여개 일자리가 없어지지만 영국의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예측됐다. 일정 분담금을 내고 단일시장 접근권을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의 경우에도 영국은 일자리 14만여개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올 초 미국과 캐나다의 항공기 무역 분쟁이 촉발했는데, 영국이 끼면서 양상이 복잡해졌다. 미 상무부가 캐나다 항공기 제작사 봄바디어의 C시리즈에 200% 이상의 반덤핑 상계 관세를 부과하는 예비판정을 내리면서 분쟁은 시작됐다.
지난 12일 미국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의 항공우주산업 노동자 수만명의 일자리를 잃게 하려는 보잉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압박했다.
분쟁의 불똥은 메이 총리에게로 튀었다. C시리즈의 날개 및 동체 제작 공장이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있다. 관세가 확정되면 4500명의 공장 직원은 물론 공장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들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메이 총리는 예비 판정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번 분쟁에 개입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영국 국민들은 “트뤼도처럼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