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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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아름다운 발

운동선수의 발로 읽히는 영어단어 Athlete’s Foot은 무좀을 뜻한다.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선수들에게 늘 무좀이 따라다녀 이렇게 명명됐다. 발을 혹사하는 연습벌레 선수들에겐 무좀은 약과다. 발이 늘 굳은살과 상처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못생긴 발이다. 하지만 팬들은 그런 선수의 발에서 감동을 받는다. 피땀의 흔적, 영광의 상처로 보이기 때문이다.

평창에서 올림픽 3연속 금메달을 노리는 ‘빙속여제’ 이상화는 황금색 발로 유명하다. 몇 해 전 공개된 그의 발은 발바닥과 옆면까지 굳은살이 박여 누런색으로 변해 있었다. ‘피겨여왕’ 김연아도 선수 시절 복숭아뼈 부분의 굳은살과 상처투성이로 퉁퉁 부은 발이 공개된 적이 있다. 당시 두 선수는 못생긴 발이 공개된 데 대해 부끄러워했지만 ‘아름다운 발’이란 팬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고된 훈련의 고통을 참아온 데 대한 놀라움을 넘어 존경스럽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의 발도 못생겼긴 마찬가지다. 20년간 마라톤 40회를 완주하며 발톱이 빠지고 뼈가 부서지는 등 발이 성할 날이 없었다. 특히 그는 마라톤선수로선 치명적인 짝발이다. 왼발이 248mm, 오른발이 244mm이다. 그런 발로 2000년 작성한 한국최고기록(2시간 7분 20초)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현역 시절 발 사진은 안쓰러움을 넘어 충격적이다. 발가락뼈는 튀어나와 있고, 발톱은 뭉개져 있다. 하루에 적게는 15시간, 많게는 19시간 연습한 탓이다. 1985년 동양인 최초 로잔 국제발레콩쿠르 1위, 1993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주역 무용수 등에서 보듯 세계적 발레리나가 그냥 된 게 아님을 그의 일그러진 발이 증명한다.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이 호주오픈 남자단식 4강전에 기권한 후 상처투성이인 발을 공개했다. 테이핑을 벗긴 양 발바닥은 처참했다. 물집이 터져 굳은살이 박인 곳에 또 물집이 생기면서 피멍까지 들었다. 그의 고통과 인내를 확인한 팬들이 또 한 번 ‘아름다운 발’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의 발은 어떤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내려다보게 된다.

박태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