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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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대통령의 핸디캡

미국의 잡지들은 최고경영자(CEO)들과 대통령들의 골프핸디캡을 주기적으로 보도한다. 골프 실력을 사업수완 연장선상에서 보는 시각 때문이다. 핸디캡을 속이는 인사도 많다.

이 분야 명수는 사업가 출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미 여자프로골프 선수 수잔 페테르센은 어제 “트럼프 대통령이 80타를 깬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는 늘 69타를 쳤다거나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 “(트럼프가) 엄청나게 부정행위를 한다”고 했다. 골프장에서 돋보이고 싶은 대통령 심리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450만원짜리 황금색 일제 드라이버를 선물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를 초청해 골프장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극진히 모셨다. 아베의 외교적 수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가기밀’이라며 밝히기를 꺼렸던 아베의 최고 스코어는 79타. 그는 미스유니버스 일본대표 아베 모모코를 만나 생애 최고 스코어를 고백했다.

스스로 멀리건을 줘 ‘빌리건’으로 악명 높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3년 11월 경기도 용인에서 실력을 보여주었다. 한화 김승연 회장 초청으로 플라자CC에서 라운딩을 한 것. 골프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는 “빌리건을 사용하면 90타는 넘지 않을 실력”이라고 흉보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핸디캡이 없다. 저서 ‘운명’에서 “(노동변호사 시절)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골프를 시작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입으로 민중, 민중, 민중 하고 외치는 위선을 싫어했다”며 “그래서 지금까지 골프도 시작하지 못했다”고 했다. 서양 시각에서 보면 친화력이 떨어지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기 십상이다. 대통령이 골프를 하지 않으니 ‘골프신동’ 임종석 비서실장도 신묘한 기술을 뽐낼 수 없을 터. 김대중정부 때 새천년민주당 김옥두 사무총장은 “잔디밭을 밟아보니 천국 같았다.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진 뒤 두 번 다시 못 갔다. 눈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골프에 대한 민주당의 정서이다. 눈치보다가 정치·외교적 기회조차 놓쳐버리니 안타까울 뿐이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