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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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평창 단일팀 불공정 논란…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다"

방남 때마다 화제 중심 된 응원단/3차례 파견… ‘미녀응원단 열풍’ 일으켜/일거수일투족 주목… 국민적 환영 받아/김정일 현수막 소동으로 거리감도 확인
2030 아이스하키팀 구성 불만/ 젊은 세대 ‘스포츠의 정치화’에 반감/“올림픽 염원 국가 이름으로 빼앗나/ 정부, 투명한 절차 공개·설득 나서야”
“남녘땅 끝자락에서 남녘 동포가 북녘 동포를 응원한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2002년 9월 23일 부산 김해공항에 ‘북한 서포터스’ 60여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부산아시안게임 참가를 위해 김해공항을 통해 들어온 북한선수단 1진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외침이었다.

이때만이 아니었다. 국제스포츠행사에서 북한은 우리에게 낯선 참가자인 동시에 가장 환영받은 손님이자 스타였다. 선수단, 응원단 등 북한 참가자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했고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평화의 메신저’로 기대했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예술단 등이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도 참가한다. 선수단 일부는 이미 방남했고, 응원단 등은 7일에 남한 땅을 밟을 예정이다. 북한의 핵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터라 그들의 존재는 더욱 도드라진다.

눈앞으로 다가온 평창올림픽 개막(9일). 그들이 이번에도 남북화합의 상징이 돼줄 것이란 기대가 높은 가운데 젊은층 사이에선 이와 상반되는 복잡미묘한 시선들도 포착된다. 

◆올 때마다 최고의 인기 북한 응원단


‘리유경과 부산경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이 한창이던 와중에 한 일간지에 실린 칼럼 제목이다. 칼럼은 리유경의 인기가 아시안게임의 활력으로 이어져 결국 부산경제의 발전을 이끄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전하고 있다. 낯선 이름의 이 여성은 북한응원단장으로 인터넷 팬카페가 속출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북한은 종종 남한에서 국제대회에 선수단을 파견했지만 응원단을 보낸 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대회 3번뿐이었다. 그때마다 북한 응원단은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부산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은 만경봉호를 타고 입항해 ‘미녀응원단’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부산 시민들은 물론 국민적 환영의 대상이 됐고 북한으로 돌아갈 때는 환송식에서만 1000여명의 시민들이 운집해 눈물로 아쉬움을 표시했다.

남북의 공동응원은 매번 화제가 됐다. 2003년 8월21일 북한과 덴마크의 남자배구 예선전이 열린 대구체육관에서는 북한 응원단과 남한 관중이 힘을 모아 북한 선수들을 응원했다. 북한 응원단이 “우리는”이라고 선창하면서 자신들의 귀에 손을 갖다대면 남한 관중들이 일제히 “하나다!”를 외쳐 적어도 경기장에서만큼은 남북은 통일된 민족이었다. 이어진 남한 배구단의 경기에서도 북한 응원단의 응원은 뜨겁게 이어졌다. 

북한 응원단은 빼어난 외모와 활기찬 모습으로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대회 때에는 북한의 퍼스트레이디가 된 리설주가 참가했던 게 나중에 알려져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큰 인기를 끌었던 만큼 반세기가 훌쩍 넘게 이어진 분단의 간극이 북한 응원단을 통해 드러날 때는 당혹감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버스로 이동하던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공항에서 만나 악수하는 사진이 붙은 현수막이 비를 맞고 있는 걸 본 이들은 “비가 오면 장군님 용안이 젖는다”며 버스에서 뛰어내려가 현수막을 떼어내는 소동을 벌였다.

◆2030세대, 아이스하키팀 추진과정에 불만


하지만 북한 참가는 한민족의 동질성과 평화 분위기 조성 등의 대의명분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난제들을 낳기도 한다. 이것이 사회적 논란으로 확산되면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차갑게 식을 수밖에 없다. 이번 남북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 논란이 대표적이다.

단일팀 구성으로 한국 국가대표팀의 일부 선수가 경기에 뛰지 못하게 되자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젊은층은 선수 개인이 노력해 올림픽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국가의 이름으로 빼앗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것이 불공정 사회에 대한 평소의 비판 의식과 연결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장모(29)씨는 “국가의 힘으로 선수 개인의 노력과 정의를 빼앗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성세대들은 청년계층을 이용하려만 한다”며 “올림픽 관람을 보이콧하겠다”고 성토했다.

이는 스타급 선수의 부족과 스포츠 행정의 무능 등과 결합하며 평창올림픽 전반에 대한 젊은층의 무관심을 촉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모(28)씨는 “최근에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폭행당했다는 소식도 있고 스피드스케이팅의 노선영 선수 자격 미달 사건 등으로 한국 스포츠연맹에 대한 불신이 생겨 올림픽에 관심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스포츠의 정치화… 민족화합의 새로운 방식 고민할 때


한반도에서 갈등이 치솟고 이를 둘러싼 관련국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쉽지 않을 때 남북한 스포츠 교류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대화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돌파구 역할을 해왔다. 평창올림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명분에만 매몰돼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이 돼선 남북 간은 물론 남한 내부의 갈등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모(34)씨는 “북한이 평창에 온다는 건 분명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다만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가 투명하게 절차를 공개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2030세대들이 올림픽에 크게 매력을 못 느끼는 점은 콘텐츠의 부재, 스포츠의 정치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로 촉발된) 젊은층의 불만은 우리 사회 공정성의 훼손 문제를 꼬집는 것인 만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올림픽을 코앞에 둔 데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 선수들도 같이 하기로 했으니 젊은 계층들 역시 함께 잘 개최되기 바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