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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號' 사법부 첫 정기인사에서 거세진 '여풍'

조경란 특허법원장, 여성 판사 가운데 첫 고등법원장급 보직 / 법원장, 고법 부장, 지원장, 행정처 심의관 인사도 '여풍' 위력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 후 처음 단행한 법관 정기인사에서 여성 판사가 대거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사상 처음으로 고등법원장급 보직에 여성 법관이 보임되고 수도권의 주요 지원 지원장 자리도 여성 판사들에게 돌아갔다.

조경란 신임 특허법원장은 여성 법관으로는 처음 고등법원장급 보직인 특허법원장에 기용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6일 법원에 따르면 이번 인사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조경란(58·사법연수원 14기) 특허법원장이다. 1998년 문을 열어 올해 개원 20주년을 맞은 특허법원 역사상 여성 법원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허법원은 특허사건 항소심 재판을 담당해 고등법원과 동급으로 분류된다. 사법사상 여성 판사가 고등법원장급 보직에 기용된 것은 조 법원장이 최초다. 조 법원장은 서울대 법대에 재학 중이던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5년 옛 서울민사지법(현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도서관장, 청주지법원장 등 요직을 거쳤으며 해박한 법률지식과 빼어난 실무능력을 갖춰다는 평을 듣는다.

물론 여성 대법관이 6명(전직 3명·현직 3명)이나 배출된 마당에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고등법원장에 여성이 기용된 것이 무슨 그리 큰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고심 재판에만 관여할 뿐 사법행정과는 비교적 거리가 먼 대법관과 달리 일선 법원장은 기관장으로서 사법행정상 소속 법관과 법원공무원들을 지휘하고 감독한다는 점에서 여성 법관의 고법원장급 발탁은 의미가 남다르다는 게 중론이다.

이는 향후 더 많은 여성 판사들이 법원 고위직에 진출할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역대 여성 대법관 중 일선 기관장인 법원장을 거쳐 그 자리까지 올라간 이는 광주지법원장 출신 전수안 전 대법관뿐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과 김소영, 박정화, 민유숙 현 대법관은 모두 고등법원 부장판사에서 일선 법원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박보영 전 대법관은 변호사 출신이다.

한 여성 변호사는 “법원장과 지원장은 사법행정을 주도하는 일선 기관장이란 점에서 사법부의 ‘허리’에 해당한다”며 “여성 법원장, 지원장 증가는 법원 내 여성 인력의 풀을 넓혀 장차 대법관 임명에서도 남녀평등을 이루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여성 판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번 인사에서 법원장급 보직에 기용된 여성 법관은 2명이 더 있다. 노정희(55·사법연수원 19기) 법원도서관장과 한숙희(57·〃21기) 대전가정법원장이 주인공이다. 특히 법원도서관장은 법원 판결과 관련된 방대한 정보를 분류·관리하고 대법원 등의 주요 판례를 요약·정리하는 책임을 맡은 핵심 보직이다. 역대 대법관 중 여러 명이 법원도서관장 자리를 거쳤다.

대법관 등 사법부 최고위직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해당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올해 총 14명이 승진한 가운데 여성도 지영난(51·사법연수원 22기) 대전고법 청주원외재판부 부장판사, 김경란(49·〃23기), 특허법원 부장판사, 김복형(50·〃24기) 서울고법 춘천원외재판부 부장판사 3명이 포함됐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여성 법관은 매년 1명가량이 고법 부장으로 승진했는데 올해는 3명이 이름을 올려 여성 판사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다.

또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의 주요 지원인 수원지법 성남·평택·안양지원 지원장이 모두 여성 법관으로 채워졌다. 고연금(50·사법연수원 23기) 성남지원장, 송혜영(53·〃24기) 평택지원장, 김정숙(51·〃24기) 안양지원장이 주인공이다. 이밖에 서경희(56·사법연수원 24기) 울산지법 수석부장판사도 이번 인사에서 지법 부장들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수석부장에 기용됐다.

부장이 아닌 지방법원 판사급의 여성 법관으로는 이영미(42·사법연수원 35기)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과 안금선(38·〃36기) 법원행정처 인사2심의관이 나란히 사법행정의 컨트롤타워에 해당하는 행정처 심의관으로 발탁돼 ‘김명수호’ 사법부의 사법제도 및 인사 시스템 개혁을 주도하게 됐다. 문선주(40·사법연수원 34기), 이선미(40·사법연수원 34기)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을 겸임하게 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