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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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내 아이’ 아닌 ‘우리 아이’ 이웃들과 함께 키워요

협동조합형 어린이집/수업부터 먹거리까지 부모들이 결정/정기 일일교사 체험… 보육 고충 공유/집처럼 편안… CCTV 없어도 믿고 맡겨/
보육교사는 존중감 느껴 행복한 육아
어린이집은 부모의 품에 있던 아이가 만나는 첫 바깥 세상이다. 아이는 난생 처음 집이 아닌 공간에서 부모와 떨어져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최근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부모들은 마지못해 자녀를 맡기면서도 걱정을 떨치지 못한다. 어린이집은 폐쇄회로(CC)TV로 부모들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이미 부모와 보육교사 간에는 불신의 관계가 형성돼 있다. 이웃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공동육아가 주목받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같은 고민을 하는 부모들이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취지다.

‘콩세알어린이집’ 어린이들이 학부모들의 지도 아래 야외에서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콩세알어린이집 제공
◆부모들이 합심해 ‘대가족’

지난 7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의 ‘콩세알어린이집’. 어린이집 회의실에서는 향후 운영계획과 교육 프로그램을 두고 논의가 한창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이사진은 모두 어린이집 학부모들이었다.

콩세알어린이집은 전국에서 처음 설립된 협동조합형 공동육아어린이집이다. 현재 어린이집에 17가정의 아이 20명이 있다. 어린이집 대표와 이사는 조합원인 학부모들이 번갈아 한다. 그만큼 어린이집 운영에서 학부모의 의견이 절대적이다.

서지연(33·여) 콩세알어린이집 홍보이사는 “조합원인 학부모들이 매달 정기회의를 열어 어린이집 운영을 논의한다”며 “어린이집 설립부터 재정, 교육, 보육교사 채용까지 운영 전반을 학부모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공동육아어린이집의 가장 큰 장점은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아동 학대나 폭력은 먼 얘기다. 콩세알어린이집 내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다. 학부모와 보육교사 간의 끈끈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5살 딸을 둔 조합원 김정하(43·여)씨는 “일부러 어린이집에 CCTV를 설치하지 않았다”며 “학부모가 보육교사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고 함께 돌보자는 것이 이유”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도 낯설게만 느껴질 수 있는 어린이집을 집처럼 생각하고 찾는다. 학부모와 보육교사의 교감이 늘면서 서로간의 스트레스도 줄었다. 학부모가 어린이집 운영에 참여하면서 어린이집 운영상의 어려움이나 보육교사의 고충을 보다 깊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박은혜(35·여) 콩세알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이전에 다른 어린이집에서 근무할 때는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이곳은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기조가 깔려있어,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콩세알어린이집’에서 학부모들끼리 모여 어린이집 운영 계획과 교육 프로그램을 의논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아이가 원하는 놀이’에 초점

공동육아어린이집과 다른 어린이집의 차이점은 ‘운영방식’과 ‘교육’에 있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은 학부모들의 의사 결정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에 초점을 맞춰 교육한다. 보육교사의 일방적인 교육보다 아이들 체험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보육교사는 아이의 관찰자이자 조력자일 뿐, 교육을 주도하지 않는다.

콩세알어린이집은 보육교사와 학부모 호칭으로 별, 이슬과 같은 별칭을 사용하고 있다. 보육교사와 학부모, 아이가 수평관계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교육내용도 교육 소위원회의 조합원들이 결정한다. 서 이사는 “학부모들도 주기적으로 일일교사 체험을 한다”며 “이를 통해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교사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공동육아어린이집은 학부모들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학부모가 보육 경험이 적거나, 개별 교육철학을 고수하려는 경우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공동육아어린이집은 매달 방모임을 열고 있다. 이 모임은 학부모들이 자기 자녀가 속한 반의 학부모 및 보육교사와 함께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다. 또 학부모를 대상으로 어린이집 운영과 보육, 아동 발달 등에 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진행한다.

공동육아 방식의 교육은 어린이집을 넘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공동육아 초등과정과 지역공동체학교 등이 대표적이다.

◆공동육아 진입장벽 해소돼야

많은 부모가 공동육아의 장점을 알면서도, 자기 자녀를 보내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공동육아를 위해서는 학부모가 상당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 공동육아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

콩세알어린이집의 경우 모든 학부모가 협동조합 산하 소위원회를 1개 이상 활동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녀가 어린이집을 1년 이상 다닌 경우 학부모가 이사직을 1회 이상 맡아야 한다. 이 밖에도 어린이집 대청소와 일일교사, 자원봉사도 해야 한다. 이는 다른 공동육아어린이집도 비슷하다.

협동조합인 경우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 별도 출자금과 조합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콩세알어린이집은 조합원으로부터 출자금 300만원과 가입비 50만원, 매월 조합비 35만원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협동조합은 어린이집 설립 및 운영 비용을 조합원이 부담하고 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어린이집 공간에 대한 임차료가 출자금과 조합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두 아들을 협동조합에 보내는 김소진(40·여)씨는 “어린이집 임차료에 대한 부담이 크다”면서 “대부분 평범한 가정이어서 출자금을 내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수가 일정 수준 유지돼야 하는데, 아이들이 졸업하는 경우 조합원 세대교체가 제때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관건이다. 이 때문에 인구가 밀접한 서울지역의 경우 새로운 조합원 모집에 어려움이 없지만, 지방 소도시에서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이 유지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권구성·권이선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