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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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3월의 열전’ 잊지말자

2018년 3월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떻게 기억될까. 이달에는 유독 1년에 한두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들이 매일같이 빵빵 터졌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열풍 속에 차기 유력 대권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성폭력 혐의로 물러났고 같은 이유로 배우 조민기는 세상과 등졌다. 4월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예고되더니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은 중국을 다녀가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국회에서는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놓고 여야가 연일 협상 중이다. 하루가 멀다고 대형 이슈가 발생하니 한반도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평창동계패럴림픽은 어느새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다. “잊지 않고 꾸준히 관심 가져달라”는 선수들의 소망은 바람에 그치는 모양새다.

지난 3년간 맡았던 장애인체육은 애틋한 분야다. 처음 접한 건 2015년 5월이다. 당시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취재를 다녀왔다. 결과를 떠나 해맑게 웃으며 달리는 선수들,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에 놀라 울다가 마스코트 인형을 받고 금세 미소를 되찾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그 뒤 크고 작은 대회와 훈련 현장을 종종 취재했다.

장애인체육 현장을 나가보면 삶의 동기 부여를 얻는다. 선수 대부분은 중도 장애인이다. 다수가 처음에는 장애를 갖게 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안에만 있다가 스포츠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온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들의 삶을 듣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나태했던 나에게 자극이 된다.

장애인체육의 묘미를 많은 사람에게 알린 건 평창패럴림픽의 유산이다. 지난 10일 패럴림픽 파라아이스하키 한-일전은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경기장은 관중이 외치는 함성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프로야구나 축구 대표팀 경기 현장 취재를 나가면 관중이 내뿜는 함성에 종종 희열을 느끼곤 하는데 장애인스포츠 현장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짜릿한 쾌감을 그때 처음 받았다. 덩달아 신이 난 선수들도 최상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에이스 정승환은 경기 후 “이렇게 많은 관중의 응원을 받으며 한 경기는 처음이다. 긴장됐지만 힘이 났다”며 환하게 웃었다.

최형창 정치부 기자
‘3월의 열전’인 패럴림픽은 한국장애인체육의 새 지평을 열었다. 소수가 즐기던 선수들의 환희와 감동적인 무대를 온 국민이 향유했다. 34만6028장의 티켓이 팔렸고 노쇼를 제외한 실제 관중만 집계하더라도 약 25만명에 달한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공짜로 보여줘도 안 올 것 같다”는 장애인체육계 우려는 완전히 빗나갔다. 절대 시간으로 보면 다소 아쉬운 편성이었지만 그래도 주요 경기들은 지상파를 통해 생중계로 볼 수 있었다. ‘그들만의 리그’였던 장애인체육이 이제 안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 만난 대한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너무 빨리 잊힐까 우려된다. 과거처럼 대회 뒤 모두가 상실감에 빠질까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장애인체육에 매료된 이들은 기사 댓글과 각종 게시판을 통해 꾸준히 관심 갖겠다고 약속했다. 올해는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장애인아시안게임이 열린다. 2년 뒤엔 도쿄, 4년 뒤엔 베이징에서 감동의 열전이 펼쳐질 예정이다. 평창에서 우리가 보여준 관심과 성원만 이어가도 훌륭한 패럴림픽 유산이 될 것이다.

최형창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