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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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구조’ 119 대신 지자체가 전담할 수 있을까?

오는 11일부터 동물구조는 지자체 의무/ 지자체 동물 담당 공무원 1명, 장비 부족도 호소/ 아슬아슬한 동물구조 빈번해/ 동물구조 담당조직 마련해야
지난해 10월 경기도 화성에선 고양이 두마리가 맨홀에 빠져 시민들이 장비를 빌려서야 구조됐다. 출처=한국고양이구조협회
오는 11일부터 유기동물을 구조하기 위해 소방관이 출동하지 않는다. 소방청은 이전에도 유기동물 구조를 ‘비긴급 상황’으로 분류해 출동을 자제해왔지만 이번부터 ‘소방차 출동 거절 기준’을 마련하고 출동을 강력히 금지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인명에 위험이 없는 유기동물 구조는 각 지자체가 맡게 된다. 당장 내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각 지자체엔 동물구조 인력이 부족하고 장비도 갖춰져 있지 못한 상황이라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7일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119 신고를 받고 전국 소방서에서 출동한 건수는 총 80만 5194건이다. 이 가운데 동물관련 출동은 12만5423건이나 됐다. 이들 신고가 구청으로 향할 예정이지만 서울시 내 구청의 유기동물 담당은 대부분 1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그 1명도 구조뿐 아니라 방역, 동물업종 인허가, 동물등록 등 다른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해당공무원이 쉬는 주말엔 당직자가 유기동물 구조를 위해 출동해야 한다. 단 강동구가 자체적인 동물구조팀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 A씨는 “다른 민원을 처리하다보면 현장에 나갈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며 “현 상황에서 동물구조 요청이 많아질까 우려되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른 구청의 B씨도 “동물복지를 구별로 관리하긴 아직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라며 “인원이나 팀을 증설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동물 구조엔 아슬아슬한 상황이 동반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각 구청엔 동물 구조에 필요한 장비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화성에선 고양이가 맨홀에 빠져 구조를 요청하는 신고가 들어왔지만 시민들과 동물단체가 소방서에서 통덫, 사다리 등 장비를 빌려와서야 구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서울 성북구에서도 한 고양이가 주택가 벽 사이에 끼어 신고했지만 동물단체가 직접 장비를 구해와 벽에 구멍을 낸 뒤에야 구조할 수 있었다.

각 구청에서 직접 구조가 힘들 경우 동물구조 업무를 위탁한 민간기관이 나서기도 한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20개 구는 경기 양주에 위치한 ‘한국동물구조협회(동구협)’에 구조업무를 위탁하고 있다. 하지만 동구협 소속으로 순찰을 하는 구조대원 7명이 20개 자치구에서 발생하는 모든 동물구조를 담당하기란 벅찬 상황이다. 동구협 관계자는 “서울시내 전역을 이동해야하니 출동이 다소 늦을 수 있다”며 “사실 당일 출동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5개 구는 관내 동물병원에 위탁해 구조보다 관리업무에 치중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성북구에서 한 고양이가 주택가 벽 사이에 끼어 시민과 동물단체에 의해 구조됐다. 출처=한국고양이보호협회

동물보호 관계자들은 동물보호법에 따라 유기동물의 구조·보호의 의무가 각 지자체에 있지만 그동안 동물 구조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동물단체 케어 임영기 사무국장은 “ 인명을 구조해야 할 119가 동물을 구조를 위해 오는 것은 맞지 않았다”며 “지금이라도 지자체에 자체적인 동물구조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박선미 대표도 “구청이 직접 동물구조를 해야 하지만 구조 불가를 선언한 경우가 많다. 결국 시민이 구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