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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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첫 아이를 기다리며

이제 코앞이다. 며칠 후면 우리 집에 새 식구가 들어온다. 아내가 10개월의 임신기간을 끝내고 마침내 출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예정일이 가까워진 지금도 아이를 뱃속에 키우고 있는 아내만큼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한다. 남자인 나는 주변의 변화를 통해서야 비로소 ‘아, 내가 아빠가 되는구나’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가까운 변화 중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내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면 거실 한쪽에 여러 물건들이 놓여 있다. 아기 욕조나 유모차, 모빌 등 덩치 큰 것부터 젖병 소독기구 등 아기자기한 것들까지 다양하다. 이미 출산 이후를 준비 중인 아내는 부지런히 필요한 물건들을 모으고, 결국 이 물건들은 그동안 ‘내 물건들’이 차지해온 내 방과 집 안 자투리 공간들을 점령한다. 심지어 아내는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내 방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폭탄선언까지 해놓은 상태다. 우리 가족이 더 큰 집으로 이사하지 않는 한 조만간 개인적 시간을 보내던 나만의 공간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
사실 처음엔 저항도 했었다. 이미 포화상태인 창고에 억지로 아기 물건들을 밀어넣으며 내 공간을 지키보려고 애를 썼다. 아기 용품 구입을 뒤로 미루기 위해 “이런 물건들을 꼭 지금 사야 하냐”고 볼멘소리도 해봤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내 항복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도 필요한 물건들이고, 출산 전 미리미리 준비해두어야 할 것들이다. 아이 방도 언젠가는 생겨야 한다. 새 식구를 맞기 위해선 희생도 해야 하고, 포기도 해야만 한다.

희생과 포기는 나만의 일이 아니다. 아내는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더 많이 내놓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아이의 성장을 위한 경제전략도 새로 짜야 한다. 아이의 먼 미래를 위한 고민들이 성큼 다가드는 느낌이다.

결국, ‘아기 하나 키우는 데도 이렇게 많은 준비와 희생이 필요하구나’라는 사실만 확인하면서 삶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 부부보다 먼저 아이를 낳고 키워온 수많은 선배 엄마 아빠들도 이런 과정을 지나왔겠지라는. 단순히 식구 한 명 늘어날 뿐인데 이토록 많은 물건과 시간과 고민이 요구되는 것, 이것이 육아다. 혼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생활이 곧 생존인 좀 더 젊은 청춘들에게는 어쩌면 이런 육아의 현실이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따른다. 그리고 그러한 공포감은 자연스럽게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풍조로 이어질 것이다. 직접 느껴보니 알 만하다. 아이 낳는 일의 무게를, 그 중압감을.

언젠가부터 저출산 문제는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출산 장려에 따른 이런저런 지원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단순한 금전적 지원 정도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겪어야만 하는 수많은 고민과 이에 수반되는 공포에 우리 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주거, 교육, 육아 분담 등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보다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적어도 새 식구를 기다리며 떠올리는 고민들이 공포가 아닌, 설렘이 되어 다가오는 사회가 하루라도 빨리 오길 바란다.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