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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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교사 그만두고 한복일… 어머니가 가장 큰 스승”

김민지 한복 디자이너 / 한복진흥센터 공모전 대상 수상 / “가족 반대로 꿈 접었다 인정받아 / 딸들이 하겠다면 적극 밀어줄 것”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한복집을 하셨지만 제가 한복에 관심 보이는 걸 싫어하셨어요. 재봉틀 앞에 앉지도 못하게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뒤늦게 한복 일에 뛰어들어 가능성을 인정받은 지금은 어머니가 가장 큰 스승입니다.”

한복진흥센터 제공
2016년 한복진흥센터에서 주최한 ‘한디자인, 입고 싶은 우리옷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민지(35·사진) 디자이너. 그는 불과 5년 전까지 중학교 과학실험 교사였다.

“어릴적부터 패션디자이너를 꿈꿔 관련 학과에도 합격했는데 포기했어요. 엄마가 힘든 길이라고 반대하셨거든요. 환경공학을 전공한 뒤 8년 동안 학교에서 나름 재미있게 일했지만 미련이 사라지지 않았죠.”

그는 무작정 패션학원에 등록해 퇴근 후 옷 만드는 일을 배웠다. 어머니는 결국 딸의 고집에 손을 들었다.
김민지 디자이너가 지난해 12월 한복진흥센터의 한복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인 한복. 한복의 콘셉트인 ‘검이불루 화이불치’에 맞게 절제된 색채와 디자인이 돋보인다. 
한복진흥센터 제공

서른 살, 막상 일을 그만두니 막막했다. 한복 전공자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한복 디자이너’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내세울 만한 경력 하나가 절실했던 그는 한디자인 공모전에 지원했다. 최종까지 올라 경복궁에서 열린 패션쇼 무대에 자신이 디자인한 한복을 선보였다. 어릴적 스케치북에 그림 그리며 상상했던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이어진 수상자 발표에선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상상도 못했죠. 식구들에게 인정받은 그 순간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후 자신감이 생겼다. 지난해 한복진흥센터의 신한복 개발 프로젝트에 지원한 그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일곱 벌의 한복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들은 묵직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색감과 단속곳을 와이드 팬츠처럼 강조한 디자인 등으로 한복의 우아함에 세련된 느낌을 더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그의 한복 콘셉트와 꼭 맞다.
 
지난해 6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한복 전시회 ‘오!고전’. 전시관을 두 공간으로 나눠 김민지 디자이너의 작품과 어머니 박영옥 오고파 한복 대표의 작품을 전시했다. 
김민지 디자이너 제공

김 디자이너가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는 ‘오고파 한복’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1960년대에 문을 연 곳이다. 오랜 단골과 그 지인들이 꾸준히 가게를 찾는다. 최근 김 디자이너가 불편했던 한복 착용감을 개선하고, 젊은 감각으로 디자인한 신한복을 선보이면서 한복집을 찾는 고객층이 다양해졌다. 지난해 6월에는 고객의 권유로 독일 쾰른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전시관을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눠 어머니의 전통한복과 자신의 신한복을 걸었다. 현지 교민과 외국인 모두 엄지를 치켜들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평생 작은 공간에서 혼자 바느질하시던 저희 엄마 한복을 외국에 소개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저희 모녀에게 엄청난 사건이었죠.”

10살, 7살 두 딸을 키우고 있는 김 디자이너는 딸들이 한복을 만들겠다고 하면 “적극 밀어주겠다”고 말한다.

“이제는 저희 엄마도 저를 믿고 응원해주세요. 저는 엄마의 발끝도 못 따라가기 때문에 많이 배워야 해요. 지금은 원광디지털대 한국복식학과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운 좋게 상을 받고, 패션쇼를 하고, 전시회도 했지만 계속 채워가야죠. 이제 시작입니다.”

김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