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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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희망찬 미래로 날다] 소방대보다 5배 빨리 도착 … 소화탄 ‘펑’ 하자 불길 ‘싹’ 진압

‘재난 골든타임’ 열쇠로 떠오른 드론
24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 산림방재연구센터에서 드론이 비행하며 산림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포천=하상윤 기자
‘펑!’

지난 24일 경기도 포천시 산림방재연구센터의 공터 위를 비행하던 드론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소화탄 4개를 투척했다. 소화탄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굉음과 함께 공중에서 터졌고, 넘실거리던 화염 위로 소화 분말이 쏟아졌다. 불길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이날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는 화재 진압용 드론의 성능을 테스트했다.

화재가 발생하자 연구팀은 ‘열화상 카메라’와 ‘액션캠’이 부착된 소형 드론을 가장 먼저 띄웠다. 드론은 상공에서 실시간으로 발화점을 탐지했다. 모니터로 현장 상황을 파악한 연구팀은 대형 드론으로 화재를 진압했고, 이후 소형 드론이 다시 투입돼 잔불을 감시, 화재 피해 규모까지 산출했다.

산림이나 고층건물 등지에서 불이 나면 지형적 특성상 초기 대응이 어려워 대형 재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기동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가진 드론을 ’골든타임’을 확보할 대안으로 보고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드론은 골든타임 열쇠” 최대 6배 발견시간 단축

25일 창원소방본부와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방재 드론 연구팀의 ‘드론 현장 적용성 실험’에 따르면 수난사고, 산악사고, 고층건물 화재 발생 시 드론은 소방대원보다 2∼5배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다. 실험에서 구조대 고무보트와 수색대원이 수난사고 현장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각각 7분, 10분에 달했다. 요구조자 발견시간은 구조대 고무보트가 9분43초, 수색대원은 33분29초 걸렸다. 드론은 출발 5분 뒤 현장에 도착, 수색대원보다 약 6배 빠른 5분32초 만에 요구조자를 발견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우충식 박사(맨 오른쪽) 드론 연구팀이 비행 전 드론을 점검하고 있다.
산악사고 실험에서도 현장도착까지 드론은 2분58초, 구조대원은 15분58초가 소요됐다. 연구팀은 드론이 구조대원에게 위치정보를 전송하고 더 나아가 환자의 상태까지 파악해 소방헬기 투입 여부 등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지휘본부에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15층 높이의 고층건물에서도 화재를 가정해 실험이 진행됐다. 그 결과 드론(2분37초)은 펌프차(6분30초)와 구급차(6분32초)보다 2.7배가량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다. 15층 화점까지 도달하는 시간도 화재진압대원은 3분이 걸렸지만 드론은 53초 만에 도착했다.

연구팀은 “드론은 관할 범위가 넓어 출동시간이 오래 걸리고 출동 진입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소방 문제를 해결해 골든타임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드론 개발’ 정부 핵심 사업으로 부상

정부는 재난현장 정보를 신속히 수집하고 초동대응 능력을 강화하고자 국산 드론을 개발하고 있다. 소방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련 부처들과 국내 연구기관·학교·중소기업 등 29개 기관은 2020년까지 490억원을 투입해 재난·치안현장용 드론 임무 장비, 시스템통합(SI) 소프트웨어, 원격 관리체계 등 현장대응을 위한 토털 솔루션을 만들기로 했다.

산림청은 드론 상용화 사업을 2016년 진행하는 등 비교적 드론 개발과 도입에 발 빠르게 움직였다. 산림청은 지난해 8월 헬기 등의 ‘멀티로터’와 비행기 형태의 ‘고정익 드론’의 장점을 결합해 이착륙 공간을 확보하지 않고 장시간 넓은 면적을 스스로 비행할 수 있는 드론 ‘NIFoS-1’을 개발했다. 이 드론은 지난 2월과 3월 강원도 삼척과 고성에서 산불이 났을 당시 헬기가 비행할 수 없는 야간에 현장에 투입돼 뒷불을 감시하고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상황실에 전송하는 등 재난 상황에서 큰 역할을 했다.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뒤에도 드론은 비상 약품, 식량 등 긴급 구호물품을 수송하고 피해지 면적, 위치 등 복구를 위한 현황조사에도 사용됐다. 산림청은 오는 2020년까지 바람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분말형 소화탄 대신 액체형 소화탄을 개발하고, 이를 드론에 탑재해 산불 진화에 활용할 예정이다.

드론이 상공 50m에서 소화탄을 투척해 불을 끄고 있다.


◆규제 개선으로 드론 ‘훨훨’ 비행

그동안 드론은 사전승인을 통해 낮에만 비행할 수 있었고, 고도 기준이 엄격해 재난 상황에 빠르게 투입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면이나 건물 상단 150 이상 범위 비행은 국토교통부에 사전승인을 받아야 해 재난이 발생해도 절차를 지키느라 자칫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컸다. 고층건물이 밀집한 도심은 스카이라인이 들쭉날쭉해 사전승인 과정이 매우 복잡했다.

이에 정부는 법을 개정해 규제를 개선하는 등 재난용 드론에 관한 제도적 기반을 다지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11월부터 항공안전법 등을 개정해 소방 등 국가기관과 지자체, 공공기관이 화재 등이 발생해 공공·긴급목적으로 드론을 사용하는 경우 사전승인을 거치지 않아도 주·야간에 상관없이 즉각 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비행 예정 지역 수평 범위 600 안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을 기준으로 300 높이까지 사전승인 없이 비행할 수 있게 해 고층건물 밀집지역 화재현장에서도 드론의 활용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드론의 발목을 잡은 규제가 풀린 덕분에 지난 3월 비행금지구역인 고성 비무장지대(DMZ)에 산불이 발생했 때 산림청은 국토부와 국방부에 사전승인 없이 유선 보고만을 거쳐 드론을 투입, 군부대로 불이 옮아 붙는 상황을 막았다.

드론 전문가인 국립산림과학원 우충식 박사는 “드론은 산지지형, 강우, 야간 등 인력의 접근과 탐지가 어려운 환경여건을 극복하고 현장정보를 얻을 수 있어 재난 대응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높인다”며 “드론은 현장 상황 모니터링부터 화재 진압, 잔불 조사, 피해 복구에 이르기까지 재난 전 과정에서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포천=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