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의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을 알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해 이같이 직접 만류했다고 윌리엄 페리(William James Perry) 미국 전 대북조정관이 나중에 확인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페리 미 국방장관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단 단장으로 방북했던 김민하 피스코리아(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총재는 25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페리 전 대북조정관이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북핵시설 폭격을 만류한 사실을 설명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김 총재의 증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공조와 국제 공조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해야 겠다는 대전제는 있어야 하되, 결정적인 시기나 어려운 기로에 섰을 때에는 (미국 등에) 양보해선 안되고 생명을 걸고 우리 민족의 편에 서달라고 꼭 부탁하고 싶다”고 조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25일 상도동 자택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민하 피스코리아 총재. |
김 총재는 “당시 페리의 설명을 직접 얘기하는 것 들었는데, 소름이 끼쳤다”며 “페리는 ‘그때(1994년) 전쟁을 했으면 승리는 미국의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사람 다 죽고 난 다음에 통일해 무엇 하느냐’고 답했다”고 전했다.
제1차 북핵위기는 북한이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하면서 고조됐고 지미 카터 특사 카드가 통하면서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로 극적으로 위기가 해소된 바 있다.
특히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9월 평안북도 영변 일대의 북 핵시설을 정밀타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실행 일보 직전에 취소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클린턴은 2004년 발간된 자서전에서 1994년 북한 영변핵시설 폭격 중단에 대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페리 전 장관도 2015년 펴낸 회고록 <핵 벼랑에서의 나의 여정> 등에서 전면적 확대 가능성 때문에 폐기됐다며 북핵시설 폭격 중단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는 취지로 기록했다.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