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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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영화 ‘곤지암’ 흥행의 의미

“너무 무서워서 팝콘 던지고 욕하고 난리. ‘팝콘비’ 내리니까 사 들고 갈 필요 없음.”

10년의 공포영화 침체기를 깨고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는 정범식 감독의 ‘곤지암’을 봤다. 생생한 공포감을 강조하는 후기들, 역대 공포영화 흥행 1위 ‘장화홍련’(314만명)을 넘보는 상승세 등은 공포 마니아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흥행 열기를 증명하듯 상영관은 남는 자리 하나 없이 빽빽했다. 순제작비 11억원이란 저예산에 공포영화 비수기 개봉, 스타 캐스팅 한 명 없이 거둔 흥행 요인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지혜 산업부 기자
곤지암은 4월 말 기준 관객 수 267만명으로 국내 공포영화 역대 2위를 확정했다. 하지만 이날 영화를 본 후 솔직한 감상은 이런 이례적 성공을 거둘 만큼 무섭거나 놀랍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나처럼 큰 기대를 걸었을 법한 이들의 실망감 및 혹평은 온라인 반응을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300만을 향해 쭉쭉 올라간 관객 수는 영화의 성공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혼란스러워지는 대목이다. 곤지암은 정말 ‘역대 2위급’으로 무섭거나 작품성이 뛰어난가? 그 진실과 별개로 2018년의 ‘곤지암 현상’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곤지암의 흥행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이른바 ‘입소문’의 힘과 실체다. 이 영화는 바이럴마케팅 효과로 초반부터 압도적인 화제의 중심에 올랐기에 관객을 쓸어담을 수 있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에 “실화냐?”라는 질문이 유행어가 된 지금, 배경이 된 곤지암 남양신경정신병원과 법적 다툼을 불사하면서까지 영화는 실제 명칭을 고집했다. 영화 속 설정과 내용이 허구임에도 ‘이거 실화냐?’란 입소문이 나게 한 배경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바닥에 나뒹구는 팝콘 사진, 극장을 나올 때 속옷이 젖어 있더라와 같은 구체적인 감상평이 쏟아지며 예비 관객의 호기심을 부채질했다.

이후 온라인에선 혹평의 비중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나 내가 극장을 찾은 날 상영관 분위기는 확실히 꽤 달아올랐다. 양 옆에서 소리를 지르고 욕설이 계속 튀어나왔다. 최근 댓글 조작 등에서 보듯 의견을 남기는 일부가 있으면 남기지 않는 다수도 엄연히 존재함을 실감했다. 단지 온라인에서 티가 나지 않을 뿐이다. 이 모든 건 온라인 시대 입소문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나타낸다.

‘공포체험 유튜브 방송’이 그대로 영화가 되고, 심지어 흥행몰이에 기여했다는 점은 또 다른 주목할 요소다. 문화 소비 측면의 세대교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거 세대가 기승전결을 따르는 스토리 중심의 서사에 익숙하다면 일명 ‘유튜브 세대’는 그런 맥락보다는 순간적인 자극과 호기심 유발 및 충족에 더 열광한다. 이들에겐 굳이 그럴듯한 구색 맞출 것도 없이 직접 몸에 카메라 달아 촬영한 흔들리는 화면, 마이크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한국 공포 특유의 한(恨)을 뺀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요즘 세대에게 한의 정서가 낯설어진 탓도 있겠지만 일단 ‘무서우면 장땡’인 영화를 만들고자 한 것 같다. 등장인물과 관객이 일심동체해 1차원적인 공포를 체험할 뿐인 이 영화는 때로는 본질에 집중하는 단순함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지혜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