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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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국회의원 재산공개 방식 바꿔야

매년 3월 국회가 공개하는 국회의원 재산공개를 볼 때마다 한숨부터 나온다. 국회는 인터넷에 공개하는 전자관보 형식으로 재산공개를 하는데, 이를 책자로도 만들어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한다. 그 양은 질릴 정도다. 올해 3월 29일에 공개한 지난해 국회의원 재산등록 관보의 경우 753쪽이었다. PDF파일 크기만 3.44MB다. 다음 관보가 21쪽인 걸 생각하면 많다는 수준 자체를 넘어선다.

매년 700쪽이 넘는 관보를 뒤적거리면서 재산공개를 살펴야 했다. 남들이 숨겨놓은 것을 살피는 것이 기자의 숙명이라지만 매년 끔찍하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숫자만 보다 보니 관보를 살펴본 뒤 자다가 숫자들이 내 목을 조르는 꿈을 꾼 적도 있다. 검산 과정에 들어가면 지끈거리는 머리는 혼수상태로 바뀐다. 

이도형 정치부 기자
그때마다 생각한 것이 “PDF파일이 아니라 스프레드시트 파일로 제공하면 좋을 텐데”였다. PDF파일은 변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MS엑셀과 같은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에 일일이 옮겨 적어야 했다. 자연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숫자 계산이 가능하고, 함수를 사용할 수 있는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에 재산공개를 한다면 자연히 좀 더 꼼꼼한 검증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국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인정보”가 이유다. 수차례 질문했지만, 그때마다 “개인정보 위·변조가 가능해서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으로 제공할 수 있느냐”고 물어봤지만,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개인정보가 위·변조되어서 돌아다닐 위험성을 감수할 수 없다는 논리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요새 시대에 국회의원 재산 위·변조 가능성을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일 테다.

그렇지만, 애초에 재산공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국회의 대응은 문제를 피해가려고만 하는 소극적 대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직자들의 직위를 이용해 사적으로 이익을 취득하지 않도록 한 것이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의 취지다. 현재와 같이 ‘보기 어려운’ 재산공개 방식은 이러한 취지를 상당 부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위·변조 가능성을 우려하거나 개인정보 침해가 문제된다면, 우려되는 부분을 삭제하거나 가린 채 공개해도 된다. 어차피 숫자계산과 스프레드시트 함수는 개인정보가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운 다스(DAS) 소유주를 둘러싼 논란은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재산공개를 전격 실시하면서 처음 불거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시발점 중 하나인 진경준 게이트는 진경준 당시 검사장이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사서 큰 이익을 본 것이 재산공개를 통해 드러나면서 시작되었다. 올해 국회가 내놓은 ‘753쪽’ 속에서도 또 다른 의혹에 찬 다스가, 이득을 본 비상장 주식이 있을지 모른다. 이를 밝혀내려면 숫자에 밝은 일부 기자들의 ‘취재열정’에만 기댈 일은 아니다.

이도형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