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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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택시 잡는 법’ 정부의 고민

10여년 전 겨울 서울 명동에서 자취방이 있는 충정로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렸다. 마침 눈앞에 택시가 있어 문을 열고 탑승해 목적지를 밝혔다.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기사가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영문도 모른 채 택시에서 하차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택시 잡는 법’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서울에서 택시 잡는 법은 이랬다. 길거리에 승객들이 서 있으면 택시가 창문을 살짝 연 채로 그 앞을 천천히 지나간다. 승객들은 문틈에 대고 목적지를 말한다. 택시가 멈추면 승차가 가능하다. 

정필재 산업부 기자
방법을 깨닫고 길거리 사람들에 섞였다. 줄지어 서행하는 택시를 향해 연신 목적지를 외쳤다. 30분이 지났지만 앞에 멈춰선 택시는 없었다. 3㎞를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택시 잡는 법을 배운 동시에 승차거부를 경험했다.

시간이 흘렀고, 기술은 발전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앱으로 택시 잡는 법’도 출현했다. 일일이 목적지를 얘기할 필요 없이 카카오택시 앱에 승차할 장소와 목적지만 입력하면 된다. 며칠 전 귀가하기 위해 카카오택시를 호출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거리를 지나는 택시의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지만 ‘예약’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마침 신호등에 걸려 대기하고 있는 차를 발견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택시에 탑승했다. ‘구파발역’이라고 목적지를 밝히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거기 가면 빈 차로 와야 돼서 호출을 거절했는데”라며 푸념했다. 운행 중 차량 계기판 옆 단말기에서 카톡택시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연신 거부버튼을 누르던 택시는 “구파발역 가느라고 다른 손님 하나도 못 태우네”라며 다 들리게 말했다.

결국 택시를 대체할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했다. 새로운 것은 불편함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공유된 차량을 승객에게 중개하는 ‘우버’를 시작으로 길이 맞는 사람들이 차를 함께 탈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풀러스’ 등 카풀 서비스와 여분의 전세버스를 통해 귀가를 돕는 ‘콜버스랩’ 등 다양한 스타트업이 탄생했다.

가격도 저렴했다. 택시의 선택을 애타게 기다렸던 택시 이용자들에게 차량과 기사를 선택할 특권까지 주어졌다. 관련 스타트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택시업계가 급제동을 걸었다. ‘자가용을 돈 받고 주행해 주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스타트업은 ‘출퇴근 시 승용차를 함께 타는 경우 예외적으로 유상운송을 허용해 준다’는 조항을 근거로 방어했다.

정부가 중재에 나섰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끝장토론(해커톤)을 열겠다며 4개 택시단체의 참여를 요구했다. 그동안 택시의 불만이 가득했던 터다. 이들은 처우도 낮고 근무환경도 나빠 승차거부는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버스와 지하철처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지원금을 달라는 요구도 했다.

활발한 토론이 기대됐다. 택시 잡는 법이 쉬워질 것이란 희망도 생겼다. 하지만 택시는 특별한 이유 없이 제안을 무시했다. 4차위가 해커톤의 주제를 ‘승차공유’ 문제에서 ‘4차 산업혁명과 택시산업 발전방향’으로 바꿨지만 이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승객이나 정부나 택시 잡는 법을 몰라 고민이 깊다.

정필재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