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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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자연장

모처럼 큰 마음 먹고 다녀온 다도해의 섬이 좋았다. 바다를 품은 섬의 정취에 빠져 힐링의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 섬의 맛과 멋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건조한 생활 속에서 기능이 퇴화돼 있던 오감을 한껏 작동시키려 애썼다. 혹여 아름다운 섬이 다칠세라 예쁜 꽃 한 송이 돌멩이 하나 욕심내지 않고 추억만 가지고 왔다.

그 와중에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천혜의 절경을 배경으로 양지 바른 곳에 누워있는 무덤들이다. 섬 곳곳을 걷는 동안에도 커다란 무덤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무덤들이 섬의 규모에 비해 너무 많고 호화롭다고 생각했다. 열두폭 병풍처럼 펼쳐진 섬의 수려한 풍광과 비경을 가리는 옥의 티로 보였다. 다른 사람들 눈에도 안타깝게 보였나 보다. “이러다가 아름다운 섬이 무덤밖에 안 보이게 될까 걱정했다”는 여행 후기가 적지 않다.

장례 문화도 상전벽해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따르면 2018년 1월 현재 화장률은 83.9%였다. 세종 100.0%로 최고고 제주가 61.0% 최저다. 2008년 전국 화장률은 61.9%였다. 10년 만에 20%포인트가 늘었으니 괄목할 만하다. 전국 팔도에는 묘지가 여전히 많다. 전국의 묘지면적은 약 1025㎢로, 국토의 1%가 넘는다. 국민 주거면적 2646㎢의 38.7%나 된다. 좁은 땅덩어리에 죽은 자들의 공간이 지나치게 넓다. 후손들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버려진 무덤들도 제법 많다.

장묘문화가 화장(火葬) 위주로 바뀌었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납골당 등 봉안시설도 꽤 많은 땅을 차지한다. 게다가 혐오시설로 인식돼 공원묘지 등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대안으로 자연장이 주목받고 있다. 화장 후 유골을 수목·화초·잔디 밑이나 주변에 묻는 자연친화적인 방식이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남은 모습까지 아름다우면 금상첨화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례가 유해를 나무뿌리 옆에 묻는 ‘수목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의 유해는 화장한 뒤 생전에 즐겨 찾았던 경기도 곤지암 화담숲 인근에 묻혔다. 고인의 평소 뜻이었다고 한다. 소탈한 성품이었던 그는 마지막 가는 길도 소박하다.

김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