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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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가족 한국 초청했는데… 제부 뇌출혈 ‘어쩌나’

필리핀 여성, 모범 가정 꾸려 대상 / 모친·동생 부부 불러 꿈같은 시간 / 수술비 등 3000만원 넘어 발만 동동 / 포항시, 병원측과 지원 협의 나서
“친정 가족을 한국으로 초청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 사는 필리핀 출신 다문화가정 페알베데자(59·여)씨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지난달 필리핀에 있는 엄마와 여동생 부부를 초청했는데 그녀의 제부가 한국에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한 달 가까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친정 가족을 초청하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포항에서 열린 ‘2017 포항 다문화 어울림 한마당’에서 대상을 받으면서다.

그녀는 2005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뒤 포항의 농촌에서 어려운 생활환경에도 봉사활동 등으로 지역에서 칭찬이 자자한 모범 다문화가정을 꾸려 대상을 받았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특전으로 친정부모를 초청할 수 있는 경비 100만원이 지급됐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홀로 된 어머니를 여동생 부부가 보살피고 있다. 그녀는 받은 시상금으로 어머니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무릎관절염이 심했다. 그래서 그녀의 여동생이 걷기 힘든 어머니를 부축하고 남편과 함께 지난달 6일 한국을 찾았다. 그녀의 친정 가족은 3주가량 한국에 머문 뒤 4월30일 출국할 예정이었다. 베데자씨는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제부가 함께 자신의 집을 찾아오자 너무 좋았다. 2009년 친정을 방문한 지 9년이 흘렀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친정을 가보지 못했다.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친정 가족과 함께 구룡포와 호미곶, 죽도시장, 영일대해수욕장 등 포항 곳곳을 둘러보았다. 인근 경주와 부산도 방문하는 등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귀국을 이틀 앞둔 지난달 28일 아침에 그녀의 제부 플로렌티노 파라스(61)씨가 샤워 도중 마비증상이 찾아왔다. 가족들은 119구급차를 불러 세명기독병원으로 옮겼다. 뇌출혈이었다.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겼으나 이후 폐렴증세까지 오는 등 현재 귀국이 어려운 상태다.

베데자씨를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청구된 거액의 진료비다. 병원 측이 지난 16일까지 중간 청구한 진료비는 2332만원이나 됐다. 지금은 3000만원이 훌쩍 넘어섰다. 진료비 중간 정산서를 받아 든 그녀는 그저 눈물만 흘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녀는 소규모 농업에 종사하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얻은 두 자녀와 함께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수천만원이 되는 진료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거액이다. 특히 병원에 입원 중인 그녀의 제부도 필리핀에서 농사를 짓는 등 치료비 납부는 사실상 어려운 입장이다.

포항시는 그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 병원 측과 협의를 하는 한편 단체나 독지가들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베데자씨는 “친정 가족을 초청하지 않았으면 이런 시련이 없었을지도…”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포항=장영태 기자 3678jy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