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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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지렛대' 활용한 김정은… '싱가포르 회담' 적극행보 왜?

트럼프 회담 취소 통보에 당혹 / ‘벼랑 끝 전술’ 이번엔 안 먹히자 / 金위원장 직접 사태 수습나서 / “6월12일 예정” 날짜까지 명시 / 대미 관계개선 의지 다시 부각 / 文대통령 통해 美 의중 파악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26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 날짜(6월12일)를 명시적으로 못 박으면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이 “6월12일로 예정되어 있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문재인 대통령의 노고에 사의를 표하시면서 역사적인 조·미 수뇌회담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피력하셨다”고 강조했다. 북한 매체가 북·미 정상회담이 6월12일 개최된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27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지난 25일 오후 북한 측 제안으로 성사됐다고 밝혔다. 북한 측이 그만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서한 발표 후 조성된 정세를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방증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웃음 짓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이와 관련해 “25일 4·27 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 방안에 관한 (서훈 국가정보원장-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간) 협의가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북측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구상’이라면서 격의 없는 소통을 한번 갖는 방안을 제시해 왔고, 관련 장관이 협의·건의를 드려 대통령이 승낙해서 25일 밤부터 26일 오전까지 실무준비를 마쳐 어제(26일) 오후 개최됐다”고 설명했다.

북한 측의 이런 행보는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겠다는 김 위원장의 절실한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그동안 북한이 보여온 행태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북한은 외부 압력에 대해 즉각 반발하며 강대강(强對强) 대결을 불사하고 벼랑 끝 전술로 상황을 최악의 국면으로 빠트리기 일쑤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24일 북·미 정상회담 취소 서한 발표에 이어 9시간 만에 나온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副相·차관)의 25일 담화와 함께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의 추진 동력을 재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통보가 북한으로서는 뼈를 깎는 아픔을 참고 감행했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이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심리적 충격이 상당했을 수밖에 없다.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될 경우 김 위원장이 입을 정치적 타격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날짜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주민에게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자체는 공개한 상태다. 특히 지난달 2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는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노선으로 정권의 지표를 전환했다. 군부 등의 보이지 않는 내부 반발을 무마하며 유화 국면을 이어왔을 김 위원장 입장에서도 체제보장과 경제건설의 승부수라고 할 수 있는 북·미 정상회담이 좌초돼 대미(對美)관계 개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경우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 개최(18일), 대미 비난을 골자로 하는 김 제1부상의 19일 담화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담화(24일)도 사실 내부 단속과 내부 불만 무마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


김 위원장은 또 한반도 상황의 주도권이 완전히 트럼프 대통령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 카드’를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북한 측은 한국을 이용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다가 북·미관계의 진전이 있으면 남북관계를 뒷순위로 밀어놓았다가도 북·미관계가 악화하면 다시 한국을 이용하려는 전략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문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전방위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국제사회에 다시 부각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체제보장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를 문 대통령을 통해 간접 확인하기 위한 목적도 있어 보인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는 “1953년 휴전협정 체결에서부터 지난 65년간 미국이 대북 협상에서 단 한 번도 북한을 이긴 적이 없던 상황에서 북한이 과거 써먹은 벼랑 끝 전술이 트럼프에게 먹히지 않으니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사태를 수습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강조한 만큼 최대 난제인 북한의 비핵화 방식에 대해서도 기존 입장보다 더 진전된 방안이 마련됐을지도 주목된다. 미국은 단기간 내 빠른 속도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목표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기존 핵무기 북한 역외(域外) 반출을 공개 요구한 이후 아직 미국이 기존의 요구조건에서 후퇴한 징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민서·박성준 기자 spice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