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S 스토리] '알짜' 잡아라 … 중진 의원들의 은밀한 거래

선거에 도움 되는 상임위 맡으려/초선 상대 '갑질'… 물밑 신경전도
막강 권한 법사위원장 경쟁 치열/국토위는 지방의원 선호도 높아
원내지도부 '교통정리'에 골머리/배정 중엔 연락 끊는 일도 다반사
#1 “병장이 장군을 이겼다.” 19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회는 상임위원장 배정 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경선’을 치렀다. 유승민 의원과 황진하 의원 둘다 국방위원장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육군 병장으로 전역했고, 황 의원은 포병 중장으로 예편했다. 국방위 특성상 황 의원 승리가 예측됐지만 결과는 유 의원이 92표를 받아 34표의 황 의원을 누르는 ‘이변’이 일어났다. 의총장 주변에서 “병장이 장군을 이겼다”는 당직자들과 의원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2. 보수정당의 한 중진의원은 상임위 변경 때마다 초선 의원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인기 상임위에 배정되면 인기 상임위에 배치된 초선 의원에게 압력을 가해 상임위를 바꾸기 때문이다. 상임위 배정이 끝난 뒤에도 그가 이런 방식으로 인기 상임위인 국토교통위로 옮겨가자 의원회관에서는 그의 위세에 대한 이러저러한 뒷이야기들이 나왔다.


설·추석연휴의 ‘민족 대이동’에 비견되는 ‘국회 대이동’이 시작됐다. 20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이 끝나고 정당별로 상임위원회 배치작업에 들어가면서다. 18개 상임위원회는 법안의 실질적인 심사를 담당한다. 300명 국회의원들은 1개 상임위에 소속돼 법안 처리를 결정한다. 2년에 한 번씩 상임위 배치가 일제히 이뤄지고, 상임위원장 배치도 다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각당 지도부와 의원들 간 ‘은밀한 거래’가 이뤄진다.

상임위라고 다같은 상임위는 아니다. 의원들로부터 환영받는 상임위가 있는 반면 홀대받는 상임위도 있다. 주로 선거에 도움이 될 법한 상임위가 ‘인기 상임위’다. 이러다 보니 인기 상임위에는 의원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비인기 상임위는 의원들 신청이 이뤄지지 않아 원내대표가 의원들을 쫓아다니며 부탁하는 풍경이 벌어진다. 상임위원장을 차지하려는 3선 이상 의원들 간 ‘물밑 신경전’도 치열하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2년마다 상임위 쟁탈전… 위원장 ‘은밀한 거래’

20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에서 7곳 상임위를 가지고 온 자유한국당은 지금 3선 의원들 간 ‘혈투’가 진행 중이다. 상임위원장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이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상임위원장 지망을 신청한 의원들을 불러 조율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임위원장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에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국회법에 따르면 상임위원장은 상임위 의사일정과 회의 일시 등을 결정할 수 있다. 교섭단체 간사와 협의해야 한다는 단서가 따르지만, 상임위원장 의사에 따라 처리 법안이나 소환하는 정부 기관장 명단 등이 결정된다. 상임위원장이 되면 정부가 알아서 지역구 예산을 배정해 준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특히 법제사법위, 예결특위, 국토교통위 등 ‘노른자 상임위’에서 경쟁이 세다.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에서 올라오는 법안의 체계, 자구 심사를 명분으로 법안을 본회의에 올리지 않고 붙잡아 둘 수 있다. ‘상원’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힘이 막강하다. 예산결산특위는 예산안 처리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권한이 셀 수밖에 없고, 국토위는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을 담당하기 때문에 지역구 SOC 예산을 타내려는 싸움이 벌어진다.

상임위원장 쟁탈전에 ‘변칙’도 활용된다. 2년 임기를 쪼개 1년씩 돌려 맡는 중재가 시도된다. 서로 먼저 하겠다고 버티면 결국 경선이 이뤄지기도 한다. 경선이 이뤄지면 의원들 간에 서로를 비판하는 ‘비방전’도 펼쳐진다. 과거 전력을 언급하거나, “모 의원은 건강이 안 좋아 상임위원장직을 맡을 수 없다”는 식의 루머도 돌아다닌다. 

◆수도권은 교문위, 지방은 국토위 ‘선호’

상임위원장 자리만큼은 아니지만, 상임위 배정을 놓고도 의원들 간 경쟁이 벌어진다. 이때도 ‘인기 상임위’에 가려는 의원들은 줄을 서지만, ‘비인기상임위’에는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한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최근 원내 지도부 의원들에게 ‘선당후사’를 강조했다고 한다. 20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을 하는데 의원들이 몇몇 인기 상임위로 수요가 쏠리자 내린 대책이다. 원내 지도부 의원이라도 당을 위해 개인 선호는 접어두고 덜 몰리는 상임위로 갈 것을 권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전 국회의원은 여당 초선의원 시절 자신을 인기없는 상임위인 법제사법위로 배치한다는 소식에 원내대표를 찾아가 눈물을 쏟은 끝에 인기 상임위로 ‘전환’을 이뤄낸 적도 있다. 

지역별로 ‘인기 상임위’가 다르다. 수도권 의원들은 교육부처와 관련한 상임위 배정을 원한다. 이번에 분할된 교육위나 예전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등이 그렇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수도권에는 이미 웬만한 SOC 사업이 다 되어 있기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화장실을 고쳤다든지, 학교에 강당을 세웠다든지 정도가 의원들의 가장 큰 ‘성과’가 된다”며 ‘교육위’에 의원들이 몰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방 의원들은 자연히 국토위를 노린다. SOC 사업예산을 따낼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농어촌 지역 의원들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를 지망하곤 한다. 농·어업 예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남지역 한 국회의원은 “농어촌 의원들은 국토위보다 농해수위를 ‘1지망’으로 쓰고 싶어한다”며 “나도 지역구가 아니면 다른 상임위를 가고 싶었지만 사정상 이번에 농해수위를 1지망으로 썼다”고 말했다.

원내지도부로선 최대한 의원들의 요구를 들어주려 하지만 모든 것을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내지도부가 의원들을 만나지 않으려 하거나, 배정 중에는 휴대전화를 끊는 일들도 발생한다. 원치 않는 상임위로 갈 경우에는 보상책도 제시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원하지 않는 상임위로 보낼 경우, (겸임상임위인) 예결특위에 ‘1순위’로 보내주겠다든지, ‘원하는 예산을 책임지고 만들어주겠다’는 식의 당근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이도형·최형창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