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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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소확행

올해 광고계가 유행시키는 세일즈용어는 ‘소확행’이다. 가전업체들이 집에서 피서하는 ‘홈캉스족’을 대상으로 냉방기기와 침구를 판매하면서 이 단어를 끌어들였다. 부동산업계도 젊은 투자자를 겨냥한 소형 수익형 오피스텔을 분양하면서 갖다붙였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지난해 펴낸 ‘트렌드코리아2018’의 예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확행(小確幸)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일본어 조어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30여년 전 펴낸 수필집에 처음 등장했다. 작가는 “백화점에서 팬티를 사모으는 게 취미”라고 했다. 그러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성 속옷인데 여러 색깔로 조합된 디자인이 나오고, 섬유 제조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능을 향상시킨 팬티를 사모으는 데 재미를 느꼈을 법하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는 소확행 삶을 추구하는 선지자로 꼽을 만하다. 그는 아내를 졸라서 침대보를 흰색으로 바꿨다. 호텔 같은 분위기에 빠져들기 위해 그랬다고 고백했다. 대학교수직을 그만두더니 일본으로 미술 유학을 떠났다. 귀국해서는 ‘나름화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화실을 차렸다. 서울 홍대앞이 아니라 여수 바닷가의 미역건조창고를 개조했다. 그의 심리학적 논리에 따르면 “격한 외로움”조차 진정한 상호작용을 위해 필요하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그의 외톨이 결정은 소확행 가치관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경기도 구리에서 입시학원을 경영하는 50대 중반 최지원씨는 양평으로 이사한 뒤 중고 로우더를 구입했다. 논과 밭을 갈고 경작하기 위한 중장비이다. 약을 치지 않은 최상급 쌀 10가마를 생산해서 친지들에게 나눠주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고 한다. 소확행 고수이다.

소확행은 성취가 불확실한 큰 목표를 추구하기보다는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심리를 가리킨다. 개인적 영역을 구축해 그 속에서 안주하려는 경향을 옹호하는 말이다. 충격적인 대통령 탄핵과 북핵 위기, 취업난으로 젊은이들의 고민이 깊어가는 요즘이다. 비록 현실이 암울할지라도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작은 행복’마저 포기하진 말자.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