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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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조상의 삶, 문화가 되고 자산이 되다

700여채 운집한 전주한옥마을/年 1100만명 넘는 관광객 발길/100년 이상 고택들 오롯이 보존/안동하회마을 세계유산에 등재
전북 전주한옥마을은 도시 한복판에 700여채의 가옥이 운집한 국내 최대 한옥 밀집지다. 조선왕조의 본향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경기전(사적 제339호) 등 역사문화 자산이 함께 자리해 한 해 1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과 건축물에 반발한 양반가들이 풍남동 일대에 모여 살았던 게 시초다. 1970∼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원형을 훼손하지 않은 채 잘 보존했다.

전주한옥마을 전경
◆전주한옥마을 ‘옛것이 새것’, 하회마을은 ‘고택이 관광 자산으로’

전주시는 이곳 한옥을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2003년부터 지구단위계획 대상에 포함해 ‘전통문화구역’으로 지정했다. 주민들은 낡은 한옥 대신 시멘트 건물을 짓게 해달라며 강력 반발했지만, 전주시는 인내심을 갖고 설득작업을 거듭했다. 대신 한옥보존지원 조례에 근거해 한옥수선 지원금을 주고 마을 주요 도로를 걷기 좋은 길로 새 단장했다.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물레방아가 도는 특색있는 길을 만들었다. 한지, 한식 등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 장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전통공예품을 대표 관광상품으로 관광객들에게 내놨다.

그 결과 한국의 전통문화와 고유한 생활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세계적 관광지로 부상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전주한옥마을 태조로 등 주요 도로변 한옥의 공시지가는 3.3㎡에 1200만원 정도로 최근 5∼6년 만에 10배가량 뛰었고, 매매가는 대지를 포함해 최대 30억원을 호가하는 곳이 생겨났다.

이영근(75) 전주한옥마을보존회장은 “방문객의 70%가량은 20∼30대 젊은이들로 고즈넉한 한옥생활과 거리가 먼 디지털 세대에게는 오래된 것이 새것이 되고 있다”며 “요즘 생활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생활하는 이들 역시 아파트 문화를 거부하는 사람들로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 하회민속마을의 주택 458채(126세대) 가운데 162채(37.0%)가 한옥이다. 단 2채를 제외한 한옥 대부분이 지은 지 적어도 100년 이상, 최고 600년이 된 고택들이다.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한옥만 10채다. 이 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고 하회별신굿탈놀이 등 상설공연을 선보인 이후 최근 4년 연속 연간 100만명 이상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 마을에 들어가려면 주차요금 2000원과 관람료 3000원을 내야 한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한옥 생활이 문화가 되고 돈이 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관공서, 호텔, 음식점, 전원주택… 한옥 대중화 바람 거세

한옥의 기능도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서울시로 현재 공공한옥 29개소와 한옥체험 공방 10여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종로구 혜화동주민센터는 1930년대에 지은 ‘ㄷ’자 형태의 근대 한옥 한 채를 구입해 2006년부터 청사로 활용하고 있다. 강연·전시·공연·포럼 등 각종 시민 교육문화 활동 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는 ‘북촌 한옥청’과 헌책을 사고팔고 독서동아리 활동과 인문학 강좌 같은 문화활동 프로그램이 열리는 ‘북촌책방’ 등도 인기다.

고즈넉한 한옥은 도서관으로 제격이다. 구로구는 2011년 개봉동에 전국 최초의 어린이 한옥도서관인 ‘글마루 한옥 어린이도서관’(441㎡)을 개관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종로구는 2014년 인왕산 자락에 한옥형 공공도서관인 청운문학도서관(734㎡)을 마련, 주민 발길을 모으고 있다. 전북대는 한옥 콘텐츠를 캠퍼스에 접목해 교문과 주요 신축 건물 등 18곳을 한옥형으로 꾸미는 ‘한스타일 캠퍼스’를 조성 중이다.

전북 남원시는 2016년 광한루원 인근 한옥 7개동에 객실 24실을 갖춘 한옥생활 체험시설 ‘남원예촌’을 개관했다. 최기영 대목장(중요무형문화재 74호) 등 한옥명장들이 참여해 소나무, 황토, 옻, 해초 풀 등을 이용해 전통방식으로 지었다. 지난해 투숙객을 포함해 1만여명이 이용했는데, 올해는 이보다 50%가량 늘어난 1만5000명이 찾을 것으로 남원시는 기대하고 있다.

한옥은 최근 호텔업계에서도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2015년 인천 송도의 빌딩숲에 오픈한 특급 한옥호텔 ‘경원재 앰배서더 인천’은 국내 최대 규모의 객실 30개와 한식당, 연회장 등을 갖춰 격조 높은 휴식공간으로 꼽힌다. 호텔현대는 강원도 강릉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 자리한 ‘씨마크호텔’ 별관으로 고품격 한옥호텔(호안재) 3채를 지어 편안한 휴식과 함께 전통문화 체험 장소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호텔신라가 뛰어들어 서울 중구 장충동에 91실 규모의 전통한옥호텔을 건립하기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자체마다 ‘한옥 활성화’ 팔 걷어…최대 3억원 융자·지원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한옥 진흥과 보급 확산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조례를 만들어 한옥을 지원하는 지자체는 광역 14곳과 기초 44곳이 있다.

국토부는 현대적 거주 성능을 확보한 대중한옥을 보급하기 위해 2009년부터 2021년까지 3단계로 나눠 기술개발을 진행 중이다. 1∼2단계 사업을 통해 시공비를 현행 3.3㎡당 1200만원선에서 685만원으로 낮춘 한옥 표준설계도서를 개발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3단계에 접어든 지난해부터는 경간(기둥간 거리)을 기존 3~5m에서 최대 16m까지 늘릴 수 있는 대공간 한옥 등 다양한 유형의 한옥 설계·시공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남도는 2007년부터 한옥을 대표 건축물로 육성하고 있다. 농촌 주거여건을 개선하고 한옥민박 등으로 소득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판단에서다. 한옥주택을 10채 이상 신축하면 최대 3000만원의 보조금과 이를 포함한 장기저리융자금 2억원을 각각 지원한다. 마을에는 돌담장과 쌈지공원 등 경관개선 사업비로 3억원까지 지원한다. 이를 통해 도시권인 목포를 제외한 21개 모든 시·군에 총 1444채의 한옥을 보급하는 효과를 거뒀다. 지난해부터는 한옥마을 외 지역으로 혜택을 넓혀 개별 한옥을 건축하는 경우에도 최대 2억원, 전통한옥 개보수 땐 1억원을 각각 저리융자하고 있다.

한옥보존진흥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한옥건축물을 지원한 서울시는 최근 통합지원조례를 마련했다. 한옥 신축 시 한옥보존 구역에는 1억2000만원을 보조하고 3000만원을 저리로 융자한다. 그 외 지역에는 보조금 8000만원과 융자금 2000만원을 지원한다. 한옥을 수선할 땐 각각 9000만원과 6000만원을 융자한다.

국내 최대 한옥 밀집지역인 경북에서는 바닥면적 60㎡ 이상 한옥 신축 시 최대 4000만원을 지원한다. 특히 경북도는 최근 한옥 재료를 현대화해 건축비를 낮추고 시공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경북형 한옥 표준설계도서’를 완성했다. 국토부 내진 설계 기준 등을 보완해 올해 하반기 중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무료 보급할 계획이다. 전주시는 한옥마을 원주민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한옥 개·보수 시 최대 2000만원까지 보조하는 사업을 6년 만에 최근 재개했다.

원광대 박기우 교수(건축학과)는 “정부와 지자체 노력에도 한옥 생활을 꿈꾸는 수요자들이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보조금 지원을 현실화하고 담장과 마을길 등 부대·기반시설, 경관개선 등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