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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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셀프’ 외유 심의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등장과 퇴장은 반전에 반전이었다. ‘금융계의 저승사자’에게 주어진 칼도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14일 만에 옷을 벗었다. 그를 물러나게 한 결정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이었다. 김 원장이 소장으로 있던 더미래연구소 5000만원 ‘셀프 후원’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고 밝혔고,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시찰을 간 사실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의 수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치욕을 씹으며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그냥 떠난 것이 아니었다. ‘김기식 파문’은 국회에서 현재진행형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2016년 9월28일 이후 공공기관 해외출장 지원실태를 점검한 결과 국회의원 38명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다. 38명 명단이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넘겨졌으나 문 의장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문 의장 자신도 코이카 돈으로 베트남 출장을 다녀온 ‘혐의’로 명단에 올라있다. 국회가 김 전 원장에게 퍼부었던 추상같던 추궁이 머쓱해질 수밖에 없다.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 꼴이다.

국회가 묘안을 냈다. 피감기관 등 외부지원으로 해외출장을 가는 경우 출장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구로 ‘국회의원 국외활동 심의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국외활동 심의위 설치 이전 피감기관 지원으로 갔다온 외유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로 한 모양이다. 가슴을 졸이고 있던 38명은 두 발 뻗고 잘 수 있게 됐다. “남 눈치 안 보고 다니던 해외여행도 어렵게 됐다”고 입맛 다시는 의원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의위는 여야 의원 7명으로 구성된다. 외부인사 없이 국회의원들끼리 얼굴 맞대고 하는 심의가 어떻게 굴러갈지는 안 봐도 뻔하다. 똑같은 일을 해도 어쩌면 이렇게 수준 이하의 행태만 보여주는지 알 수 없다. 새출발을 하려면 과거에 대한 반성이 먼저다. ‘개 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 되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개혁을 외쳐놓고 돌아서면 그만인 국회가 꼭 그 짝이다.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보는 ‘내로남불’의 행태가 가관이다.

김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