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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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김동연·이재용의 대화

1997년 외환위기. 원인은 무엇일까. 산더미처럼 쌓인 경상수지 적자, 높은 단기외채 비중, 높은 부채비율, 개방된 금융시장, 선단식 기업경영…. 많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그중 하나, “경제부처를 과천으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제정책의 상왕’으로 불린 당시 재정경제원 관료들이 그렇게 말했다. 책임을 떠넘기려 한 말일까. 아니다.

서울∼과천 사이에 가로놓인 남태령. 상습 교통정체 구간이다. 지금도 그렇다. 약속시간이 늦어 버스전용차로로 달린 장관의 관용차. “장관은 법을 어겨도 되나.”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거리가 멀면 만남도 줄어든다. 두 번 만날 것을 한 번으로. 그 결과는? 정부는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관치가 판치던 때다. 감 놔라 배 놔라 할 정부가 아무 소리를 하지 않으니 대응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 그것이 바로 외환위기라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토대를 이루는 자유시장경제와 ‘탈(脫)관치’. 퇴색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사사건건 ‘신관치’의 망령이 꿈틀댄다. 바리바리 이삿짐을 싸 세종시로 간 정부 부처들. 장관은 서울로 가고, 공무원은 장관을 한없이 기다린다. 적막강산 같다고 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에 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만났다. 평택 캠퍼스는 30조원을 투자해 세계 반도체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곳이다. 두 사람의 만남, 무엇이 그리도 이상하다는 건가. “투자 구걸, 고용 구걸”이라고 했다는 청와대 참모. 노동단체 대표는 칙사대접을 하고, 기업 총수는 만나선 안 될 대상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IT서밋 모임을 가졌다. 미국 IT 거물 14명이 모였다. 이 부회장은 초대받았지만 가지 못했다. 미국의 미래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 것은 빤하다. A학점인 트럼프의 경제성적표, ‘시장과의 소통’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투자 구걸, 고용 구걸? 산속 암자에서 나라를 경영하겠다는 건가. 그런 사고방식이야말로 위기를 재촉하는 ‘남태령보다 높은 벽’이 아닐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