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은 23년이 넘는 기간 동안 ‘TV쇼 진품명품’을 통해 우리의 고미술품을 소개하고 있다. ‘TV쇼 진품명품’은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진품, 명품을 발굴해 시청자들에게 배우는 즐거움과 깨닫는 기쁨을 주고 있다. 전문 감정위원의 감정으로 고미술품의 진가를 확인하기도 한다. 1995년 3월5일에 첫 전파를 탔다.
KBS1 ‘TV쇼 진품명품’의 이재홍 아나운서(오른쪽)와 백항규 PD는 “‘진품명품’을 돈의 가치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며 “물품이 지닌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을 때 비로소 ‘진품명품’이 된다”고 말했다. KBS 제공 |
그동안 진행자는 모두 일곱 번 바뀌었다. 초대 진행자는 방송인 임성훈이다. 이후 왕종근(2·4대), 이창호(3대), 윤인구(5대), 김동우(6대) 등이 이를 거쳤다. 현재 진행을 맡고 있는 이재홍 아나운서는 7대다. 그는 지난 2014년 8월17일부터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프로그램 진행 4년을 목전에 둔 그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백항규 PD도 동석했다.
“스포츠 뉴스나 경제 관련 프로그램도 진행해봤지만, 그때보다 시간이 더 빨리 흐른 것 같아요. 우리 문화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행을 맡아 초반에 많이 헤맸습니다.”
이 아나운서는 고미술 전문가가 아니다. ‘완전 초짜’였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만 했다.
“지금은 처음보다 더 편한 마음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진행자가 아니라 시청자의 입장에서 함께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는 게 맞겠네요. ‘TV쇼 진품명품’은 대단한 문화재를 다루지 않아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하듯이, 시청자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죠.”
‘TV쇼 진품명품’은 수십억원 가치의 물품부터 몇 만원, 몇 천원의 물건까지 수많은 고미술품을 다뤘다. 역대 최고가는 1000회 특집에서 소개된 대동여지도 채색신유본(25억원)이다. 최저가는 ‘0’원으로 처리된 물품들이다. 가품이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단지 감정가로만 물건의 가치를 판단하면 안 됩니다. 감정가는 낮지만 선조들의 삶의 일부를 알 수 있다면 그것대로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아나운서는 최근에 방영된 묘지 분쟁 관련 고문서를 예로 들었다. 감정가는 높지 않았다. 하지만 유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던 조선시대에는 묘지 관련 이웃 간 다툼이 치열했으며, 해당 문서는 그런 선조들의 관습을 잘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TV쇼 진품명품’ 스튜디오. |
‘TV쇼 진품명품’은 잊힐 뻔한 문화재를 발굴한 적도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이다. ‘하피첩’은 다산이 유배 시절, 자신을 그리워한 아내가 보낸 붉은색 명주 치마를 가위로 잘라 아들에게 쓴 편지를 모은 책이다.
한 아파트 건설 소장이 일하던 중 폐지를 수집하러 온 할머니의 손수레에서 책을 발견했다. 온통 한자로 돼 있어 그는 ‘TV쇼 진품명품’에 의뢰했고, 1억원의 감정가를 받았다. 2006년 4월에 방송됐다. 하지만 방송을 전후로 ‘하피첩’은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 우여곡절 끝에 진품으로 밝혀졌고 2015년 서울옥션을 통해 국립민속박물관에 낙찰됐다. 이후 ‘하피첩’은 전국 전시회에서 국민들과 만나고 있다.
“그림, 도자기, 글씨, 공예, 지도, 근대문물 등 6개 분야 10여명의 전문가들이 두 차례에 걸쳐 감정을 합니다. 명장(名匠·기술이 뛰어나 이름난 장인)을 초빙하기도 하죠. 그럼에도 진품인지 가품인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백 PD)
‘TV쇼 진품명품’은 어느덧 청년이 됐다. 단지 방송을 통해 고미술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미술품을 즐길 수 있을지도 고민 중이다.
“고미술품을 다루는 유일한 프로그램이 됐습니다. 고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인문학적 지식도 전달하고 있어요. 바람이 있다면 저희를 통해 가치를 다시 알게 된 고미술품들이 지역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전시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백 PD)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