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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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디지털 성범죄

홍익대 인체 누드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찍어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여성 모델 안모씨에게 어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이 사건은 ‘성차별 편파 수사’ 논란의 촉발제였다. 당초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낮게 점쳐졌던 터라 여성단체들의 ‘성차별 수사 논란’ 주장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남성혐오 사이트 ‘워마드’에는 ‘서울대 몰래카메라 설치’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와 대학 측은 부랴부랴 학내 화장실 1700여 개를 수색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불법촬영 영상물 삭제 등을 지원하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설치 후 100일간 1040명이 신고했다고 한다. 개소 50일 당시 신고한 493명의 배가 넘는다. 피해자들이 속속 지원센터를 찾고 있는 것이다. 한 피해 여성은 기관의 도움을 받아 불법영상을 삭제했지만 무차별적으로 확산하는 규모에 두 손을 들었단다. 결국 직장도 그만두고 남들이 알아볼까 아예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해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졌다. 피해자 한 명당 많게는 1000건 이상 유포됐다니 어이가 없다.

불법 촬영했거나 그 촬영물을 유포해 적발된 사건은 2011년 1523건에서 2016년 5185건으로 3.4배나 늘었다. 피해자 중 여성이 약 90%이고, 가해자 대부분은 배우자, 전 연인 등 아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경찰의 불구속 수사율이 97%에 달한다는 것이다. 불법촬영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이는 수만명의 여성들이 시위 구호로 가장 앞세우는 게 ‘구속 수사’다.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 성폭력 처벌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출범 이후 80여 건 제출됐으나 계류 중이다.

디지털성범죄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인격 살인’이다. 국민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불법영상물 확산 속도가 워낙 빨라 피해 구제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디지털성범죄=성폭력’이란 사회적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 경찰청이 어제 ‘사이버성폭력 특별수사단’을 설치하고 100일간 특별단속하기로 했다. 피해자가 여자냐 남자냐에 따라 처벌 강도가 달라서는 안 된다. 몰카 범죄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채희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