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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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경의행복줍기] 돈의 비밀

요즘 ‘혼술’, ‘혼밥’, ‘혼여’가 인기다. 혼자 먹는 술, 혼자 먹는 밥, 혼자 가는 여행, 누구 신경 쓸 것 없고 언제든지 내 마음대로이니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또한 친구라고 해서 주머니 속의 돈이 다 같지는 않다. 내 형편에 맞게 하려면 혼자가 가장 속 편하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에 호텔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호캉스’가 인기다. 그래서인지 호텔의 실내 풀장은 여유롭고 쾌적하게 수영을 즐기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아빠의 표정은 편하게 즐길 수 없는 분위기를 탓할 생각은 조금도 없는 듯하다. 아내와 아이에게 1년에 한 번쯤은 뜻밖에 호사로움을 누리게 해준다는 가장으로서의 뿌듯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돈은 행복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행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실생활에도 야무지게 개입하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돈은 최선의 종이요, 최악의 주인이다” 라고 했다. 돈을 부리면 삶이 편해지지만 돈에 끌려 다니면 고달파진다.

TV에서 계속 상승하는 아파트 가격을 소개하며 앞으로의 전망을 내놓는데, 그 아파트 한 채가 없는 나는 우울해야 할 것인가. 아니다.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본다. 내가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내 돈으로 지금 바로 텐트를 살 수 있다. 이 멋진 이동식 집으로 올여름 가족과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신문에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로 자동차 사려면 지금이 적기라고 한다. 그런데 자동차 살 돈이 없다. 그러나 자전거 살 돈은 있다. 그것도 두 대나. 사랑하는 사람과 북한강변을 끼고 달리는 자전거 하이킹은 내 인생을 얼마나 푸르고 싱싱하게 만들 것인가.

손자 손녀에게 좋은 장난감을 마음대로 사줄 수 없어서 말년의 인생이 즐겁지가 않다. 그러나 내 호주머니 속에 동화책 한 권 살 돈이 들어 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동화책을 성우처럼 제대로 읽어 주면 “할머니 최고야”라는 멋진 찬사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려고 양손에 잔뜩 비닐봉지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윗집 가족이 해외여행 간다고 화보 찍는 모델처럼 멋진 옷차림으로 큼직한 여행가방을 옆에 놓고 서 있다. 순간 집이 최고라고 소파에 누워 하루종일 TV 보는 것으로 여름휴가를 보내는 남편에게 권투 글러브를 던져 주고 싶다. 한 판 붙자고. 하지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본다. 내가 쓸 수 있는 만원짜리 넉 장. 남편과 영화 한 편 보고 메밀국수 먹기 딱 알맞은 돈. 그렇다, 내가 뭐 꿀릴 게 있는가.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편하게 쓸 수 있는 돈만이 내 돈이다. 내가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내 돈으로 오늘 신나게 더위를 날려보면 어떨까.

조연경 드라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