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절대왕정 전성기를 이끈 루이 14세는 군대의 일사불란한 동작과 행진이 사회 통제와 질서 유지에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666년 1만8000여명의 병사가 참가하는 호화스러운 열병식을 열었다. 그의 치세를 상징하는 행사의 하나로 꼽힌다. 미국 역사학자 조지프 아마토는 “똑같이 발을 맞춰 행진하는 군대는 사회를 조직하는 왕의 능력을 보여줬다”고 했다. 유럽은 한동안 불안에 떨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프랑스를 방문해 프랑스대혁명 기념 열병식을 참관한 뒤 국방부에 열병식 준비를 지시했다. 이례적인 일이어서 정치권의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최근 의회를 통과한 2019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열병식 개최안이 포함됐다. 재향군인의 날 하루 전인 11월10일에 열릴 열병식에 1200만달러(약 136억원)가 든다니 꽤 큰 규모가 될 듯하다. 북한도 정권 수립 70주년인 9월9일을 앞두고 평양 시내 곳곳에서 열병식을 준비하는 동향이 포착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새해는 공화국 70돌을 기념하는 의의 있는 해”라고 한 만큼 대규모로 치를 것이다.
국방부는 국군의 날 70주년인 10월1일 시가지 군사 퍼레이드를 하지 않고,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블랙이글스 비행, 드론봇 시연과 콘서트로 행사를 치른다. 통상 5년 단위로 꺾어지는 정주년 국군의 날 행사 때는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시가지 행진을 했지만, 올해는 남·북·미 간에 한반도 평화체제가 논의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열병식을 하지 않는 게 과연 옳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