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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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계엄문건과 정명(正名)

2004년 소위 계급장을 달고 제20기계화보병사단에 가기로 돼 있었다. 어떤 부대인지 미리 알아보니 대한민국 육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화력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K1A1 전차 등의 최신 장비가 가장 먼저 배치됐다고도 했다. 인터넷에는 20사단이 참가한 화력 시범 영상이 ‘최강’, ‘압도적’ 등의 수식어와 함께 떠돌고 있었다. 괜히 가슴이 뿌듯해져서는 벌써부터 인접 기계화사단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정보도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의 주력 부대 중 하나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어쩐지 사·여단 역대 지휘관 중에는 신군부 핵심인사들이 많았다. 부임 후 창고 정리를 하다 보면 시위 진압봉 같은 충정훈련 시기의 유물이 발견되곤 했다.

유태영 정치부 기자
다행인 것은 군복무 시기가 1980년대가 아니라 21세기라는 점이었다. 사단 사령부에는 광주 시민과의 화해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었다.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니 적이 마음이 놓였다. 시민을 적으로 상정한 훈련도 모두 사라진 뒤였다.

그해 가을, 강원도 철원에서 최전방 철책이 절단된 사건의 여파로 실제 출동상황 일보직전까지 가는 일이 있었다. 무장을 하며 두려움이 일기는 했어도 마음에 거리낌은 없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었다.

반대로 2006년 봄의 일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뒷골이 서늘해진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 진압을 위해 군부대가 투입되는데, 사단 예하부대 중 하나가 포함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경찰도 아닌 군이, 적군이 아닌 민간인을 제압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부대의 과거사와 겹쳐 심적 고통이 더 심했다. 실제 작전에는 다른 부대가 투입됐다. 어딘가에 군인들이 시위대 양 손과 발을 뒤로 묶어 포박한 사진이 실려 있었다.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10년도 훌쩍 지난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기무사령부 계엄 문건에서 낯익은 부대 이름을 발견하고 나서다. 계획이 실제 집행되었더라면 전차와 장갑차를 몰고 국회와 헌법재판소, 정부서울청사, 국방부를 점령했을 20사단 장병들, 나아가 1000만명 넘는 연인원이 참가한 평화로운 시위가 열렸던 광화문광장 등지를 접수했을 다른 5개 기계화사단과 2개 기갑여단, 6개 특전여단 장병들이 눈에 밟혔다. 지휘계통조차 무시한 채 일사불란하게 국가를 장악하는 음습한 계획 안에서 도구로서만 존재하는 바로 그들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책에서 “특전사 출신들이 저를 고마워한다”고 한 적이 있다. 과거 정권 탈취에 이용돼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돌렸던 ‘원죄’와 ‘부끄러운 흉터’로 특전사 출신임을 드러내는 게 일종의 ‘금기’처럼 돼 있었는데, 자신이 특전사 출신임을 밝히고 다니면서 그런 금기를 깼다는 의미였다.

자칫 우리 군이 더 광범위하고 깊은 흉터를 새겼을지도 모르는 정황이 이번 계엄 문건 파문으로 드러났다. 이제 진실을 명백히 가려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오로지 국가와 국민에만 충성하며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인 우리 장병들에게 올바른 이름을 찾아주는 길이다.

유태영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