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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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소주 건강부담금

소주는 장구한 역사를 지닌 술이다. 고려 후기에 원나라에서 전래됐다. 곡주를 끓여서 얻는 증류식 술이어서 노주(露酒)·화주(火酒)·한주(汗酒)라고도 했다. 값비싼 사치품이었다. 몽골군 주둔지였던 안동·개성 등에서 제조법이 발달해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진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소주로 인한 폐해 기록이 적지 않다. 태조의 맏아들인 진안대군 이방우에 대해 “성질이 술을 좋아해 날마다 많이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삼더니, 소주를 마시고 병이 나서 졸(卒)했다”고 했다. 조선 개국 이듬해 일이다. 세종 때 이조판서 허조는 “벼슬에 오른 처음에는 소주를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집집마다 있으니 그 호화롭고 사치함이 극하여 소주로써 목숨을 잃은 자가 흔히 있다”며 “술을 과하게 먹지 못하게 하는 영을 내리면 거의 목숨을 잃는 데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상주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성종은 “소주를 숭상해 관부에서부터 여염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시기를 좋아하고 점점 풍습을 이루는 데 이르렀으니, 간혹 지나치게 마시면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이치가 있다”면서 “약으로 복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경계하여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말도록 하라”고 의정부에 명했다. 권고에 그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는 ‘소주의 독’에 관한 기록이 있다. “소주를 너무 마셔 중독이 되면 얼굴이 파랗게 되고 입을 열지 못하게 되며, 혼미해 의식을 잃게 된다. 심하면 창자가 썩고 옆구리가 뚫어지며 온몸이 검푸르며, 토혈과 하혈이 되어 곧바로 죽게 된다.” 소주 과음의 병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일제강점기에 알코올을 물로 희석한 소주가 나온 뒤에는 대중적인 술이 됐다. 이제는 다들 술 하면 소주를 먼저 떠올린다. 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한 추가 재원 확보를 모색하면서 소주 등 주류에 담배와 마찬가지로 건강증진부담금을 매기는 방안이 거론된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흡연이나 비만보다 크다니 그런 얘기가 나올 법하지만, ‘꼼수 증세’ 비판이 거센 데 비추어 국민 공감대를 얻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