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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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지으며 ‘농방’…청년 ‘농튜버’ 뜬다 [S스토리]

일기 쓰듯 담아낸 농촌의 풍경… '소통의 싹' 틔우다 / 농촌의 일상 꾸준히 영상 올려 / 정보제공에서 예능·다큐로 진화 / 시청자 대부분 귀농 꿈꾸는 4050
“촬영하는 걸 기자님이 사진 찍으니까 쑥스러워서 자꾸 말을 더듬네요.”(웃음)

유튜브 영상 속 능숙한 진행과 달리 카메라 앞에 선 박광묵(36)씨의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안녕하십니까? 청도달콤한농장입니다. 가을이라 바람이 선선하네요.” 지난 11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의 농장에서 만난 박씨는 투박한 경상도 억양으로 아직 감이 채 익지 않은 감나무 앞에 서서 촬영을 시작했다. 나무뿌리가 아래로 뻗어 나가는 고욤나무와 옆으로 뻗는 돌감나무의 차이를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11일 경북 청도군 매전면의 한 감나무 앞에서 유튜브 ‘청도달콤한농장’ 채널을 운영하는 박광묵(36)씨가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청도=이창훈 기자
삼각대를 들고 영상을 촬영하는 모습을 찍자 박씨는 “누가 영상 촬영하는 제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게 처음”이라며 “가끔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가다가 카메라 앞에서 중얼거리는 절 보고는 ‘자 와카노(왜 이러냐). 혼자 허공에 주께네(지껄이다)’라고 말하면서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한다”고 웃음 지었다.

유튜브 ‘청도달콤한농장’ 채널을 운영하는 박씨는 지난해 3월 처음 동영상을 올렸다. 귀농 10년 차를 맞아 변화를 꿈꾸던 박씨는 일기를 쓰듯 농사짓는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농사하면서 얻은 지식을 남들과 공유하고 자식들한테 ‘아버지가 이렇게 일하는구나’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처음에는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서 화면 밖에서 설명만 하고 작업 모습이나 작물만 촬영해서 올렸다”고 말했다.

촬영 장비는 단출했다. 삼각대와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7이 전부였다. 촬영한 영상을 컴퓨터로 옮겨 간단한 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윈도 무비메이커로 배경음악과 자막을 삽입했다. 박씨는 “내가 아는 것을 설명하고 작업 모습을 보여주면 되니까 촬영은 어렵지 않다”며 “영상 잘라 붙이고 자막을 넣는 편집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1년 6개월 동안 매주 최소 2∼3편의 영상을 꾸준히 올렸다. 농기계 사용하는 법, 농사 팁 등 자신의 일상을 꾸밈없이 유튜브에 올리자 구독자는 점차 늘었다.

14일 기준으로 전체 업로드 영상은 428편, 채널 구독자는 2만1783명, 총 조회 수는 1142만5728회에 달했다. 농업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일반인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박씨의 일상도 달라졌다. 판매를 권유하지 않아도 박씨의 복숭아와 자두를 사고 싶다는 연락이 끊이질 않았다. 올해 박씨 밭에서 기른 복숭아와 자두 1000상자는 모두 직거래로 판매됐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박씨가 사용하는 장비나 농약을 물어보거나 농사·귀농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가 하루에 수십통이 걸려온 적도 있었다. 지난달에는 미국의 한 교포가 애청자라며 박씨를 만나기 위해 농장까지 찾아왔다. 박씨의 아내 조아라(34)씨는 “큰아들 학교에서는 남편이 이미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유명인이 됐다”며 “힘들게 농사일하고 나서 밤에 편집한다고 끙끙대는 거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진정성을 갖고 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고 남편을 응원했다.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보다 유용한 농사 지식을 알려드리려면 제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죠.” 동영상을 촬영한 뒤 농업 기술에 대한 박씨의 열망은 더욱 커졌다. 최근에는 버섯과 인삼 등 약용작물에 도전하기 위해 최근 경북농민사관학교에서 약용작물 기초반 과정을 수료했다. 청도군농업기술센터의 복숭아·자두 아카데미에서 배운 유용한 정보들은 새로운 동영상 콘텐츠로 가공됐다. 박씨는 “평생 농사만 지은 어른들은 지식과 경험은 풍부하지만 전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분들의 노하우와 지혜를 익혀 많은 농업인과 공유하는 소통의 창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다큐·예능·요리 등으로 진화하는 농업 콘텐츠… 농튜버가 뜬다

농업이 먹고 체험하는 것을 뛰어넘어 콘텐츠가 되고 있다. 농사를 소재로, 농촌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농튜버’(농사+유튜버)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세계일보가 확인한 결과 이날 기준으로 구독자 1000명이 넘는 농튜버 계정은 11개다. 대부분 2016년 하반기∼지난해 상반기에 본격적으로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평균 구독자는 8419명, 업로드 영상은 106.7편을 기록했다. 구독자가 최대 200∼300만명에 달하는 게임·먹방·뷰티 분야 등의 유튜버에 비하면 걸음마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농사 정보 제공에서 예능·다큐멘터리로 분야를 넓혀 진화하고 있다.

박씨의 청도달콤한농장을 비롯해 ‘성호육묘장’ ‘날라리농부’ ‘버라이어티 파머’ 등 농튜버 채널 모두는 기본적으로 농사짓는 모습이나 농사에 필요한 기계를 작동하고 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구독자 1만7968명의 버라이어티 파머 채널은 청년 농부 오창언(24)씨가 운영 중이다. 강원 인제군에서 1만6000여㎡(약 5000평) 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는 오씨는 농사를 경험해보지 못한 10∼20대를 타깃으로 작물 재배와 수확 과정, 농촌 생활, 농산물 유통 과정 등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지난해 12월 인천에서 경남 거창으로 귀농한 김순자(42·여)씨는 ‘지안농원TV’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귀농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를 영상으로 기록해 알리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김씨의 채널은 현재 구독자가 4000명을 넘어섰다. 농사·시골 생활·건강밥상이라는 테마별로 콘텐츠를 제작해 귀농을 준비 중인 중장년층에게 호응이 높다. ‘B급 농업예능’을 내세운 ‘농사직방’은 청년 농부 서종효(32)·강영수(40)·유경호(28) 이장이 개설한 채널이다. 이들은 대구 수성구에서 농촌체험 프로그램과 도시농부 교실 등을 운영하는 ‘희망토 농장’을 운영하며 농사직방을 통해 농사의 즐거움을 예능 형식으로 풀어낸다.

◆시청자 5명 중 4명이 45세 이상… 농튜버 ‘콘텐츠 수요↑’

애플리케이션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유튜브는 지난달 모든 연령을 통틀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앱이 됐다. 50대 이상의 유튜브 사용 시간은 64억분으로 카카오톡 사용 시간(54억분)을 처음으로 뛰어넘었다. 50대 이상 유튜버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이 관심 있는 귀농·귀촌에 대한 콘텐츠 소비도 늘어나고 있다. 은퇴 후 귀농을 준비 중인 박영우(51)씨는 “농사 지식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생생한 귀농 경험도 접할 수 있어서 관련 영상을 자주 즐겨본다”고 말했다. 

청도달콤한농장 채널 시청자는 45세 이상이 전체의 85%를 차지한다. 24세 미만 시청자는 2%에 불과하다. 지안농원TV 채널도 비슷하다. 핵심 시청자는 만 55∼64세로 전체 시청자의 44%를 차지한다. 만 45세 이상 시청자 비중은 94%에 달한다. 화려한 편집과 세련된 영상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장년층에게 신뢰를 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용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매년 전체 귀농·귀촌인구의 절반 이상이 50, 60대”라며 “화려하지 않더라도 농사를 소재로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면 귀농·귀촌을 꿈꾸는 40대 이상에게서 큰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청도=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