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운전면허학원 ‘배짱교습’

우수한 강사진과 최고의 교육. 간판을 보기 좋게 닦아 놓았다면 호객행위에 걸맞은 대우가 뒤따라야 한다. 제값 주고도 ‘불신사회’의 단면만 맛본 뒤엔 뒷맛이 매우 쓰더라.

최근 미뤄뒀던 운전면허시험에 응시했다. ‘친절’로 도배된 학원 광고에 혹해 들어왔지만 실상은 딴판이었다. 언제 빨았는지도 모를 누더기 소파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휴게실은 논외로 치자. 더욱 실망했던 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승인한 ‘우수강사’들의 무례함이었다. 말수가 유독 적었던 강사들은 핸들을 잘못 꺾는 등 잔 실수가 나오면 육두문자를 날릴 태세로 화를 퍼부었다. 군복무 시절에도 겪지 못한, 밀폐된 공간에서의 고압적인 언사는 다 큰 성인도 주눅 들게 했다. “아, 이것도 못해? 거참, 쯧!” 시속 50㎞만 밟아도 KTX에 준하는 속도감에 떨어야 했던 나에게는 툭 던지는 한마디가 야속하기만 했다.

안병수 문화체육부 기자
휴식시간 하릴없이 담배만 태우며 자책하는 동안 끽연이 급했던 강사들도 나란히 섰다. 그중 일부가 내 존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강생들의 뒷담화를 일삼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 XX 잘한다더니 답답해 죽겠어. 울까봐 때릴 수도 없고….” 도로교통법 제106조 등에 따른 자동차운전전문학원 강사 자격시험 공고를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에서 열람했다. 어엿한 교육자를 뽑는 셈이지만 인성과 관련된 시험과목은 없었다. 부족한 소양을 지닌 ‘일부’에게 내 인격 역시 갈가리 찢겼을 걸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물론 주변에서 예사로 듣던 얘기다. 누군가는 강사의 호통에 운전대를 잡은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고 했고, 다른 이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수업을 빌미로 허벅지를 수차례 추행당한 과거도 털어놨다. 문제는 운전교육은 응당 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탓에 불쾌한 관행들이 유야무야 지속된다는 점이다. 타인의 생명을 자칫 앗아갈 수 있다는 안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면, 이는 강사의 채찍만으로는 담보할 수 없다. 초보운전자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생명을 위해 떨어지는 낙엽에도 조심스럽다. 너, 나, 우리가 이미 겪었던 바다.

씁쓸하게도 이런 ‘배짱장사’는 단속은커녕 해결의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다. 2016년 운전면허시험의 난도가 높아지면서 학원비도 60만~70만원 수준으로 종전의 40%가량 올랐다. 그러나 자동차가 필수인 현대사회에서 수요가 줄지 않자 교육의 질은 치솟은 값을 따라가지 못하고 늘 제자리인 형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운전면허시험 비용에 부담을 크게 느낀다는 성토가 줄을 잇는다. 도로주행교육(6시간) 역시 가격에 비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 시스템하에서는 비싼 돈을 주면서 수모를 감수해야 하니 이만한 부조리도 없을 성싶다. 주마다 운전면허시험 기준이 다른 미국의 수업료는 한국과 비슷한 편이다. 대신 20시간 이상의 실기교육과 더불어 강사에겐 최근 10년간 모든 범죄기록을 조회하는 등 최소한의 인성면접을 거친다. 비교할수록 더욱 초라한 한국식 운전교육의 현주소다.

시험을 단번에 통과하고도 손에 쥔 건 ‘불편면허증’이었다. 밑진 기분에 찜찜한 속이 가시질 않는다. 지금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학원으로 달려가는 운전 꿈나무들이 교육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당국의 보수작업이 필요한 때다.

안병수 문화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