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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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무역전쟁의 반사이익

작가 류소영이 “테너가수를 연상시키는 그 이름과는 달리 후줄근하고 추하다”고 묘사한 견과류가 있다. 성경에도 등장하는 피스타치오다. 류소영의 ‘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 작중인물은 그 못생긴 견과류를 병적으로 좋아한다.

국내에 들어오는 피스타치오는 대개 미국산이다. 피스타치오의 원산지는 중·서 아시아다. 어떤 자료는 구체적으로 터키 동남부지방을, 또 어떤 자료는 아프가니스탄을 지목한다. 현재의 주요 재배 지역으로도 터키나 아프가니스탄, 혹은 지중해 지역 등이 꼽힌다. 그런 견과류가 왜 주로 미국에서 수입될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980년 내린 대(對)이란 금수 조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 전까지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한 것은 이란이다. 그 시장 판도가 뿌리째 흔들린 것이다. 이란은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그 빈틈을 메운 것이 1960년대부터 꽃피우기 시작한 미국의 피스타치오 산업이다. 이란은 이제 그 시장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역사상 모든 발명은 승자와 패자를 낳았다. 국제 분쟁·갈등도 마찬가지다. 승자가 되는, 혹은 승자로 남는 관건은 대내외 충격에 어찌 효율적으로 적응하느냐다. 술 안주로 제격이고, 과자·아이스크림 재료로도 쓰이는 ‘후줄근하고 추한’ 견과류가 그 이치를 잘 말해준다.

미·중 무역전쟁의 포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경제엔 큰 악재다.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피스타치오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빛과 그림자는 함께 가는 법. 반사이익을 얻는 국가도 없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멕시코, 베트남, 일본, 독일 등을 무역전쟁 수혜국으로 지목했다. 이들 국가의 기업들이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에서 속속 중국의 경쟁 기업들을 제치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수혜국 명단엔 한국이 없다. 미·중 의존도가 워낙 높은 만큼 사실 최대 피해국 신세만 면해도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체질로 계속 가도 되는 것일까. 반사이익을 기대할 체질을 일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무역전쟁 장기화에 대비한 국가 전략을 세밀히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도 먹지 않을 이란산 견과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이승현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