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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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수사, 외압으로 축소… 진상 규명해야” [차 한잔 나누며]

‘한국판 아우슈비츠’ 사건 알린 김용원 前 검사 / 86년 산에 꿩 잡으러 갔다가 인부 20여명 강제노역 목격 / 중대범죄 확신 서 수사 개시 / 법무부·대검찰청 등서 압력 / “횡령액 낮춰라” 지시도 받아 / ‘비상상고’만으로는 부족해 / 특별법 제정해 피해 배상을
“검사님, 주말에 별일 없으면 꿩이나 잡으러 가입시더!”

1986년 12월 부산지검 울산지청(현 울산지검)에 갓 부임한 초임검사가 이 지역 포수의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한국판 아우슈비츠’란 악명을 얻은 형제복지원의 실체는 영영 가려질 수도 있었다.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의혹을 최초 수사해 세상에 알린 김용원(63·사법연수원 10기) 전 검사의 얘기다. 현재 법무법인 한별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인 김 변호사를 지난 28일 만나 30여 년 전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군법무관 시절 꿩 사냥을 해본 추억을 떠올린 김 변호사는 포수의 안내로 산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정작 꿩 그림자도 못 봤다. 대신 역사적 사건의 서막을 올리는 제보를 들었다.

초임 검사 시절 ‘형제복지원 사건’을 수사해 세상에 알린 김용원 변호사가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30여년 전 당시 수사 과정을 얘기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포수가 그러길 산속에 이상한 작업장이 있대요. 죄수도 아니고 뭣도 아닌 인부들이 아주 허름한 옷차림으로 산을 개간하고 있다는 거예요.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는데, 툭하면 세게 구타한다는 거예요. 그 말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죠. 안 봐도 범죄잖아요. 사냥은 집어치우고 거길 찾아갔어요.”

과연 포수 말대로였다. 꾀죄죄한 차림의 인부 20여명이 죽 늘어서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몽둥이를 쥔 사내들과 사나운 개 여러 마리도 보였다.

“와, 이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중대범죄라고 확신했죠. ‘책임자는 당연히 구속이다’ 이렇게 작정을 했죠. 온 김에 근처 인부 숙소에도 가봤어요. 건장한 남자들이 쫓아와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더라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사람이라고 둘러대고 피했어요. 얻어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내사를 거쳐 이듬해인 1월13일 박희태 당시 부산지검장에게 사건을 보고했다. 검사장은 “알아서 해봐” 하고 흔쾌히 수사 개시를 허락했다. 김 변호사는 곧장 형제복지원 간부들을 불러 조사한 뒤 구속했다.

“수사할수록 여기저기서 외압이 극심했어요. 처음엔 지자체장이, 나중에는 청와대 지시를 받았는지 법무부와 대검찰청 그리고 부산지검 순으로 압력이 들어왔어요. ‘사회가 시끄러우니 수사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흔적을 남기려고 ‘업무상 명에 의해 수사를 중단했음’이라고 기록해 버렸어요.”

형제복지원 박인근(2016년 85세로 사망) 원장을 엄벌하려면 수용자의 사망 원인 등 여러 조사가 필수였다. 하지만 당시 전두환정권은 울산지청에서 파견근무를 하던 경찰관들을 강제로 철수시키는 등 수법으로 수사를 방해했다. 남은 방법은 여러 은행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박 원장의 국고보조금 횡령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총 11억4200만원을 찾아냈어요. 늘어난 금액을 반영해 공소장을 변경하려고 하니 또 허락을 안 해줘요. ‘안 되겠다’ 싶어서 사표를 써서 주머니에 넣고 오전 5시에 검사장을 만나러 관사로 갔어요. 인상을 찌푸리고 거실에 앉아 ‘왜 왔냐’더니 송종의 당시 차장검사한테 전화를 걸어 바꿔주더라고요. 송 차장이 ‘너 이 ×× 꼭두새벽부터 거길 왜 갔어!’ 하고 악을 썼어요. 저도 화가 나서 ‘욕은 그만하시죠!’ 하고 검사장 면전에서 전화통을 부술 듯이 내리쳤어요. 그렇게 검사장 승낙을 받아낸 겁니다.”

하지만 검찰 지휘부는 ‘공소장에 기재할 횡령액은 7억원 아래로 맞춰라’는 최종 지침을 내렸다. 당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이 10억원을 넘으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했다. 도를 넘은 ‘특혜’가 아닐 수 없었다. 상부 명령을 거역할 기개가 부족했던 그는 범죄일람표에 일자별로 정리한 횡령액 일부를 가위로 잘라냈다. 남은 금액은 6억8250만원이었다.

특수감금과 횡령 혐의로 기소된 박 원장은 1심에서 징역 10년에 벌금 6억825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대법원의 잇단 파기환송 판결로 1·2·3심을 더해 재판이 무려 7번이나 열렸고 특수감금 혐의는 끝내 무죄가 확정됐다. 박 원장 형량은 2년6개월로 쪼그라들었다.

최근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하라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권고함에 따라 조만간 이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다시 판단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비상상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김 변호사 생각이다.

“비상상고를 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피해자들이 수용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30여년 전 사건을 증언할 사람을 찾을 수 있겠어요? 결국 국회에서 특별법을 통과시켜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이 합리적 배상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마이동풍인 국회를 보니 아직도 세월이 걸릴 것 같네요.”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