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직할시, 광역시, 그리고 특례시

#1. 선친의 고향은 광주다. 아니, 1988년 1월 이전엔 전남 ‘광산군’이었다. 전두환정권 말기인 1986년 11월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하자 이듬해 인근 광산군이 광주에 흡수돼 지금의 ‘광산구’가 됐다. 벌써 30년도 더 지난 옛날이야기다. 오래전 작고한 부친 고향을 묻는 이도 이젠 별로 없다.

광주의 직할시 승격 전에는 부산·대구·인천처럼 인구가 100만명이 넘어야 직할시 자격이 주어졌다.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1986년 광주 인구가 아직 90만명이었음은 직할시 승격이 서둘러 정치적으로 이뤄진 일임을 암시한다”며 “(100만명을 채우려고) 광산군 행정구역을 모두 직할시로 편입시키는 졸속 행정이 있었다”고 꼬집은 바 있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전 전 대통령이 뭔가에 쫓기듯 다급히 광주를 직할시로 만든 건 1980년 5·18 민주화운동으로 손에 묻힌 피를 퇴임 전 어떻게든 씻고 가려는 화해 시도였을 게다. 하지만 5·18 희생자와 유족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말년에 또 기소돼 광주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으니 업보를 풀긴 다 틀린 모양이다.

#2. 김영삼정부는 1995년 지방자치제 본격 시행을 앞두고 직할시를 광역시로 고쳤다. 직할시에 담긴 ‘중앙정부가 직접 관할한다’는 뜻이 지방자치 이념에 맞지 않아서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광역시도 인구 100만명을 기준으로 삼았다.

1990년대 중반 대학생 시절의 일이다. 울산에서 갓 상경한 1학년 후배한테 서울 출신 선배들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얕잡아보는 듯한 태도에 감정이 좀 상했는지 신입생이 한소리 했다. “울산도 내후년에 광역시 되는데요….”

1997년 울산광역시 출범을 끝으로 인구 100만명 돌파라는 광역시 승격의 기준은 사실상 폐기됐다.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 경남 창원·마산·진해 3개 도시가 합친 창원시는 인구 100만명이 훌쩍 넘었지만 광역시가 되지 못했다. 창원이 광역시로 승격해 경남에서 떨어져 나가면 도세가 확 줄어들 것을 염려한 경남도의 반대가 컸다.

#3. 요즘 특례시 논란이 뜨겁다. 특례시란 광역시와 달리 도 소속이긴 하나 광역시에 맞먹는 광범위한 자치권을 누리는 새로운 유형의 지방자치단체다. 창원을 필두로 역시 인구 100만명이 넘은 경기 수원·고양·용인까지 총 4개 도시가 뭉쳐서 ‘특례시 추진 공동대응기구’를 꾸렸다.

이들은 문재인정부 핵심 공약인 ‘지방분권 확대’를 들어 자기네를 특례시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한다. 광역시 승격까진 아니어도 대도시에 걸맞은 특별한 예우를 해달라는 뜻이다. 이에 경기도 등 상급 지자체들은 “특례시를 신설하면 도내 다른 시·군들은 엉망이 될 것”이라며 반대한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자치행정 구현의 취지엔 동의한다. 옛 직할시나 광역시 사례에서 보듯 특례시 승격 확정과 동시에 해당 도시들 시장의 인기도 치솟을 것이다. 하지만 인구가 많다고 주민들의 삶의 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건 아니다. 괜히 특별시, 광역시, 특례시, ‘그렇고 그런’ 중소도시 하는 식의 서열 고착화로 주민들 간에 위화감만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