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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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스토리] 나는 몇 점짜리 반려동물 엄마·아빠일까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 0.2% / 사회적 인식 부족에 법·세부정책 미비 / 가입 문턱 높고 보장범위도 협소 발목 / 英 20%·獨 15% 등 선진국들 비해 저조 / 뜻밖의 비용지출 큰 부담으로 / 보호자 85% “병원 진료비 부담 가장 커" / 최근 5년새 결제금액 매년 10% 증가 / 사설보험 편법으로 판매하는 사례도 늘어 / 펫보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 / 반려동물수 정확히 파악돼야 손해율 산정 / 동물등록제부터 정착시켜 실효성 확보해야 / 의료비 천차만별 … 진료 수가제도입 시급
2014년 9월. A씨는 반려견 레오(현재이름·5)를 데리고 한강으로 산책을 나갔다. A씨가 레오의 목줄을 잠시 풀어두자 신이 나서 주변을 돌아다니던 레오는 건너편에서 돌진해 오던 자전거와 맞닥뜨렸다.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타고 오던 B씨는 레오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 핸들을 꺾었다가 치아가 부러지고 어깨뼈 등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A씨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겁이 덜컥 나서 자리를 뜨고 말았다.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치료비와 주위의 비난이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 다행히 레오는 임시보호를 자원한 윤민아(35·여·서울 거주)씨의 사랑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윤씨는 “당시 예방접종도 완벽하게 되어 있었고, 근육도 짱짱한 데다 치석 하나 없이 관리가 잘되어 있던 상태였다”며 “레오의 주인이 갑작스레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길고양이까지 데려다 키울 정도로 고양이를 사랑하는 김모(33·여)씨는 ‘완벽한 집사’가 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이유로 키우던 고양이 똘이를 몇년 전 입양보내야 했다. 가족의 반대가 생각보다 강했던 게 문제였다. “처음엔 싫어도 키우다 보면 정 든다”고 말하며 가족들에게 고양이 사랑을 강요했지만 가족들의 강한 거부감은 호감으로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를 느낀 탓인지 똘이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다 결국 동물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신경안정제를 투약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데다 장기 치료가 이어지자 병원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결국 김씨는 똘이를 지인에게 입양보낼 수밖에 없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뜻밖의 비용 부담이나 털 알레르기 등으로 인한 가족들의 거부감, 직장 업무 등으로 제대로 돌볼 수 없다는 자책감…. ‘반려인’들이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지지는 못하는 대표적 이유들이다. 반려동물과도 ‘가족’의 연을 맺고 끝까지 잘 지내기 위해서는 사랑 말고도 따져봐야 할 조건들은 많다. 이런 조건들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첫눈에 반해’ 덜컥 입양했다가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아픈 이별로 끝나기 십상이다. 박애경 한국애견협회 사무총장은 “동물에 대한 인식 개선에 힘입어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가족이 된다는 것’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나머지 세심한 현실적 고려 없이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너무 쉽게 받아들이려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가족이 예상치 못한 사고 등으로 해체되는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려동물 관련 금융상품의 발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동물의 병원비는 물론 타인에게 입힌 상해 등을 보장해 주는 동물보험 등과 같은 펫금융 시장이 보다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에 비해 법과 세부정책 미비,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펫금융 시장의 발전 속도가 더딘 편이다. 5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9월 말 한국의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은 0.2%로 영국(약 20%), 독일(약 15%), 미국(약 10%), 일본(약 8%)에 비해 극히 저조한 수준이다.

◆반려동물 혼자 둘 때 가장 힘들다… 사별 두려움도 커

삼성카드가 20~40대 반려인 11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날 공개한 리얼타임리서치(고객이 가맹점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즉시 생각과 의견을 수집·분석하는 모바일 기반의 리서치) 결과다. 2개의 중복응답을 허용한 이번 리서치에서 반려인들은 평소 동물을 좋아하거나(53%) 친구·가족을 갖고 싶어서(28%) 반려동물을 키우게 됐다고 응답했다. 자녀 등이 원해서(25%), 자녀들의 정서함양을 위해서(13%), 자녀들의 책임감을 키워주기 위해서(5%) 등 자녀들을 이유로 든 응답자들도 40%를 넘었다. 

하지만 대다수 반려인들은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에는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이유들로 양육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응답자들의 69%인 825명은 반려동물을 혼자 두고 외출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응답했다. 이어 이별이나 사별(펫로스·Pet loss)에 대한 두려움이 43%(517명)로 2위, 금전적 부담이 38%(458명)로 3위에 올랐다. 김재영 한국 고양이 수의사회 회장은 “미리 펫로스에 대한 심리적 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배설물 처리나 위생관리, 돌보는 데 들어가는 여러 가지 노력(58%)에 따른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상당수 응답자는 병원비 등 반려동물의 건강관리 비용지출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실제로 관련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2%(20명)에 불과했다. 펫보험의 존재를 모른다(39%)고 답한 사람도 467명에 달했다. 59%는 펫보험에 대해 알고는 있었으나 가입 의사는 없다고 답변했다. 보장범위가 너무 협소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말 소비자시민모임의 설문조사에서도 반려동물 보호자의 85%가 동물병원 진료비용 부담이 가장 크다고 응답했다. 최근 신한카드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동물병원 관련 총 결제금액과 일인당 취급 금액은 최근 5년간 매년 10% 이상씩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펫보험 시장이 정착되지 않은 틈을 타서 동물병원이 사설보험을 편법으로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충남에서 동물병원을 하고 있는 민모(37)씨는 “펫보험이 발달할 수 있도록 국가정책적인 차원에서 제반 요건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펫보험 활성화로 반려동물 의료비 부담 줄여야

보험업계와 수의업계에서는 펫보험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물등록제의 실효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진료를 받은 동물이 보험대상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려동물의 나이를 속여 보험에 가입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도 막을 수 있다. 반려동물 정보를 정확하게 수집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도 등록은 중요하다. 해당 동물의 수가 파악돼야 손해율 산정을 보다 엄밀하게 할 수 있다. 지금은 개만 의무 등록 대상이지만 이마저도 법적인 실효성은 떨어진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한 번이라도 걸리면 벌금(20만원)을 내야 하지만, 관계 부처에서는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단속에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실효성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고양이에 대해서는 의무등록제조차 시행되지 않고 있지만 펫보험이 진전되기 위해서는 고양이에 대한 등록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협회 관계자는 “등록칩에 대한 거부감으로 동물등록제가 답보상태인데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협회도 동물등록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반려동물의 내장칩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

김재영 한국고양이 수의사회 회장은 “동물병원별 진료비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행위별 진료 수가제가 빨리 도입되고 개체인식이 명확해지는 게 절실하다”며 “사보험 보험요율을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게 되고, 보장범위를 정할 수 있으면 진료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 전진경 동물보호단체 카라 상임이사, 김미자 미우켓회장, 박애경 한국애견협회 사무총장, 김재영 한국고양이수의사회 회장 등 참여.
※10명의 전문가들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최소 6점 이상이어야 반려동물 부모시험 합격선을 넘어선 것이라 지적했다. 각 1점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