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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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스파이 칩

스파이(첩자)는 인류 문명 형성과 더불어 존재해 왔다. 성경에서도 가장 오래된 직업 중의 하나로 꼽는다. 춘추전국시대에 완성된 손자병법 ‘용간(用間)’편은 “백성들의 희생을 최소화해서 승리를 얻으려면 반드시 첩자를 통해 적정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기는 법이니 전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책략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냉전시대 스파이는 군사외교 분야에 집중됐지만, 이제는 산업 현장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총성없는 전쟁터인 현대 산업사회에서 정보가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기업은 경쟁 회사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첨단 기술 정보를 손에 넣는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자산이다. 그래서 산업스파이들이 세계 각국, 특히 기술 선진국에서 암약하고 있다. 정보 수집 수법도 도·감청과 초소형 사진기 사용은 기본이며, 컴퓨터 하드 디스크를 통째로 복사하고 해킹도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 스파이 칩까지 등장했다. 중국이 미국 주요 기업에 납품되는 전산 서버에 초소형 스파이칩을 심어 애플과 아마존, 대형 은행 등 30개국 미국 기업을 해킹해 정보를 빼내갔다고 블룸버그비즈니즈위크(BBW)가 보도했다. 애플과 아마존은 이 보도를 부인했지만, BBW는 “6명의 전·현직 당국자와 애플 내부 관계자 등 최소 11명이 중국 스파이 칩의 발견 사실을 증언했다”고 밝혔다. 이 스파이 칩은 네트워크를 공격하려는 침입자에게 문을 열어주는 백도어(뒷문) 역할을 한다고 한다. 대부분 백도어 공격은 네트워크 운용 소프트웨어에 바이러스를 심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중국은 아예 하드웨어 칩을 메인보드(주기판)에 꽂아 백도어처럼 이용한 것이다. 이 칩은 쌀알보다도 작아 육안으로 쉽게 알아볼 수가 없다.

국내 기업과 기관도 중국 스파이칩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대기업부터 중소 벤처기업까지 중국에서 제조한 메인보드로 만든 서버를 쓰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드웨어 공급망 공격에 대응할 체계와 기술 확보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얼마나 많은 중국산 메인보드가 유통되는지 집계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