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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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北의 南 언론 길들이기

삼성이 2000년 7월 46억원을 들여 평양 실내체육관에서 컬러 전광판 점등식을 했다. 북한 탁구선수 8명과 삼성생명 탁구선수 8명이 축하 경기를 했다. 북한은 당초 신문 방송 등 언론사 6개사의 취재를 허용키로 했다가 조선일보 기자가 포함되자 배제를 요구했다. 삼성이 이를 거절하면서 언론의 취재는 불발됐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2000년대 기자들이 유람선을 타고 금강산 취재에 나섰다. 북한은 기자 명단을 받아보고 ‘조선’과 ‘한국’이라는 회사명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조선일보 기자는 취재를 접었고, ‘한국’ 대신 영문 이니셜 H로 이름을 바꾼 기자들은 하선이 허용됐다. 이후 북한은 더 노골적으로 한국 언론에 간섭했다. 2015년 10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취재 때 기자들의 노트북과 이동식 저장장치를 검열했다. 공동취재단의 노트북을 전수조사했고, 북한 관련 파일이 저장된 노트북을 압수하고 하루 뒤 돌려주었다.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담은 방송사 테이프와 사진을 검열하겠다며 시비를 걸어 화면 송출을 지연시켰다. 기자들은 단체 성명을 내고 북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위라며 강력 반발했다.

북한의 미성숙한 언론관에 훈계했던 공무원들도 있다. 2014년 2월 남북고위급 회담에 나섰던 남측 수석대표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북한 대표로부터 남한 언론에 대한 보도 통제 요구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토머스 제퍼슨 미국 대통령이 언론 없는 정부 대신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고 했다”며 민주사회의 기초가 언론자유라고 일갈했다. 박지원 의원도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2000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장관급 회담 때 북한의 반대를 물리치고 조선일보 기자를 취재단에 포함시켜 특정 언론 배제 방침을 꺾었다.

어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순번에 따라 남북고위급 회담 취재에 나설 예정이었던 조선일보 기자의 취재를 불허했다. 북측의 요청이 없었다고 하지만 곧이들리지 않는다. 북한이 세상에 나오게 하려면 언론에 대한 인식 개선이 절대적이다. 그 책무가 정부에 있는데 이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