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 채취로 흥한 ‘황금의 도시’ … 황혼마저 얼어붙다 [극동시베리아 콜리마대로를 가다]

톰토르를 떠나 콜리마대로의 구도로와 신도로가 교차하는 큐베메로 다시 돌아간다. 구도로는 현재 큐베메에서 톰토르까지만 사용되고 있어 폭이 좁고 상태가 좋지 않다. 도로 양편 산자락에는 이끼류 야겔과 늪지 진달래가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어 에벤인의 순록 유목 지역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야겔은 순록의 주식으로 ‘순록의 빵’으로 불린다. 순록은 소나 말과는 달리 발굽이 작고 발걸음이 가볍다. 순록 떼가 야겔이 자라는 곳에 다녀도 땅이 파여 야겔이 말라 죽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늪지 진달래는 에벤인이 정화의례 등 각종 의례에서 사용하는 식물이다. 사하공화국 주류 민족인 야쿠트인이 각종 의례에 노간주나무나 낙엽송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큐베메에서 우스트-네라까지는 약 240㎞ 거리인데 비가 내려 4시간 정도 걸렸다. 우스트-네라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거세져 다른 일정을 접고 곧바로 민박집으로 향했다. 민박집은 2층 단독주택으로 1층에 커다란 방 4개가 있고 방마다 2층 침대가 여러 개 있었다. 2층은 공사 중이었고, 1층의 방 하나에는 공사 인부들이 묵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이라 민박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푹 파인 도로의 물웅덩이들, 멀리 보이는 높은 산꼭대기와 지평선에 가득 낀 구름, 드문드문 보이는 낡은 지붕들은 쇠락한 마을의 음울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스트-네라는 오이먀콘의 행정 중심지이자 인구가 가장 많은 마을이다. 1950년대까지 인구가 1만5000명 이상이었다가 소비에트연방 붕괴 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최근에는 5400명 정도로 줄었다.

우스트-네라는 야쿠츠크에서 966㎞ 거리, 야쿠츠크와 마가단 사이 콜리마대로의 중간 지점, 네라강 하류와 인디기르카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1950년부터 도시형 마을이 되었고, 1954년에 오이먀콘 군청 소재지가 됐다. 이곳은 연평균 기온 섭씨 영하 15도의 영구동토지대여서, 말뚝 위에 집을 지었고, 온수 파이프라인도 지상에 설치돼 있다.

네라강 하구 강변에 조성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기념 공원에는 오른손에 검을 치켜들고 왼팔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상이 우뚝 서 있다.
우스트-네라는 1939∼1941년 수십 곳의 대규모 사금광이 발견돼, 1942년에 사금광산이 건설됐다. 1949∼1958년 달스트로이 소속의 인디기르카 교정노동수용소가 운영됐고, 수천 명의 수형자들이 도로와 주택, 금 채광에 동원됐다.

현재까지 우스트-네라의 주요 산업은 채금이다. 금을 농축시키는 공장이 있고 ‘인디기르졸로토’ 등 여러 개의 채금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채금 분야가 지역 주민 고용구조에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금 채광 이외에 우스트-네라는 콜리마대로 교통의 중요 거점지역이다. 2008년 우스트-네라에서 마가단까지의 콜리마대로 신도로가 완공돼 연중 사용 가능하게 됐다. 그리고 겨울이 긴 야쿠티야, 콜리마 지역에서는 겨울에 얼어붙는 강을 지나는 겨울용 도로가 개통된다. 겨울이 되면 우스트-네라부터 추콧카반도의 빌리비노까지 거의 1500㎞에 달하는 겨울용 도로를 활용하게 된다.

우스트-네라 사금채취장. 사금을 채취하고 남은 모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서 산처럼 보인다.
다음날 아침 찾은 오이먀콘 군청은 외관상 별다른 특색이 없는 2층 건물이었다. 내부에는 넓고 깨끗한 국제회의실이 마련돼 있었고, 국제회의에 필요한 첨단 영상, 음향 장비들도 갖추어져 있었다. 이어 네라강 하구 강변에 조성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기념 공원으로 이동했다. 공원 입구 좌측 간판에 새겨진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칼을 들고 우리 땅에 오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적 영웅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말이다.

영구동토지대 우스트-네라 지상에 설치된 온수 파이프.
공원은 오이먀콘 지역에서 금을 채취하는 ‘한갈라스’와 ‘탈’이라는 기업이 제공한 자금으로 조성됐다. 깔끔하게 조성된 공원에는 오른손에 검을 치켜들고 왼팔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상을 중심으로 탱크, 대포, 군인 동상, 기념탑 등이 배치돼 있었다. 공원 뒤쪽과 옆쪽 울타리 너머에는 황금색을 칠한 큰 돌이 열을 지어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전공을 세운 러시아의 주요 도시 명칭이 새겨져 있었다. 공원 옆에는 러시아정교회 소속 ‘성모 승천 성당’이 있어 전쟁 기념 공원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공원을 나선 뒤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허름한 식당 건물 옆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청년들이 가판대를 설치해 커다란 수박과 참외를 팔고 있었다. 멀리서 이 오지까지 온 상인들과 과일들이었다.

러시아어로 ‘코리아’라고 적힌 매장. 중국에서 온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동포가 운영하고 있다.
점심식사 후 주변을 둘러보다 러시아어로 ‘코리아’라고 적힌 간판이 보여 들어갔다. 넓은 매장에 매우 다양한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파는 상점 주인은 놀랍게도 중국에서 온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동포였다. 김씨 성의 그는 20년 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했는데, 전에는 장사가 잘 돼 매장이 더 컸다고 했다. 현재의 상점 규모로 보아도 우스트-네라 최대의 만물상인 것이 틀림없었다. 아들이 현재 한국에서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오이먀콘 행정 중심지이자 인구가 가장 많은 우스트-네라 시내 거리. 드문드문 보이는 낡은 지붕들은 쇠락한 마을의 음울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수수만을 향해 길을 나섰다. 우스트-네라 마을을 막 벗어나는 지점의 주유소 곁을 지나는데 제 키의 절반쯤 되는 커다란 배낭을 옆에 세운 젊은 청년이 차를 세웠다. 저 멀리 서쪽 어느 도시에서 출발해 마가단까지 배낭여행을 한다는 러시아인 청년이었다. 좌석에 여분이 없어 태워주지 못했다. 배낭만 메고 척박하고 험한 오지를 지나 대륙 끝 마가단까지 여행을 한다는 청년의 용기와 집념이 놀라울 뿐이었다.

김민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 교수
마을을 벗어나자 창밖으로 강변의 모래 산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사금을 채취하고 남은 모래들인데,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서 그런지 그 규모가 대단히 커 산처럼 보였다. 황금이 사람을 불렀고, 숨이 막힐 듯한 모래 산들이 더 높아져 가고 더 많아져 간다.

김민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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