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확성기 꺼진 DMZ… 평화 노래하다 [여행]

분단된 지 70년이 흐르다 보니 현실에서 생활하며 분단 국가란 걸 느끼긴 힘들다.

북한 관련 뉴스를 접하며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임을 인식할 뿐이다.

올해는 남북 간 훈풍이 부는 뉴스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과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등

남한과 북한 사이 관계가 한층 좋아지는 소식이 많았다.

아무리 관계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북한에 가진 못한다.

그래도 북한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고,

북녘 땅을 바라 볼 수 있는 여행지들이 있다.

북한과 가장 근접한 접경지역으로 ‘안보관광지’로 알려진 곳이다.

한국관광공사는 ‘평화’의 상징으로 변모하고 있는 안보관광지를 소개했다.

철원 노동당사.
 
철원 노동당사 1층은 좁은 통로를 통해 여러 개의 방이 이어진다.
◆철원 노동당사


남북 정상이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은 감동을 선물했다. 그 역사적인 자리에 노래 한 곡이 있었다. 환송 행사를 위해 남북 정상 내외가 평화의집을 나설 때 흘러나온 노래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표한 ‘발해를 꿈꾸며’다. ‘발해를 꿈꾸며’는 발표 당시 철원 노동당사(등록문화재 22호)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노동당사는 강원 철원에 있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민통선이라는 족쇄에 묶여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 노동당사는 2000년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오가는 평화 여행지로 거듭났다.

노동당사가 평화 여행지로 다시 태어난 것은 역설적이게도 건물에 서린 깊은 아픔 때문이다. 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의 군정, 이어진 한국전쟁과 분단까지 아픈 시간을 힘겹게 지나는 동안 수많은 상처가 생겼다. 노동당사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빈 성냥갑처럼 외벽만 간신히 남았다. 하지만 외형이 퇴락했다고 그 안에 담긴 역사가 사라진 건 아니다. 2002년 5월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멋진 야경도 노동당사에서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오후 8시에 노동당사를 겨눈 경관 조명이 일제히 불을 밝히면, 예쁜 조명이 도화지 위에 흩어진 물감처럼 곳곳에 스민다. 여유가 되면 경관 조명이 모두 꺼진 밤하늘도 놓치지 말자.

양구 두타연에서 물길을 따라 가는 평화누리길.
양구 녹슨 철모와 철조망.
◆양구 두타연


강원 양구를 대표하는 여행지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깊고 푸른 소(沼)를 이룬 두타연이다. 50여년 만에 빗장을 열어 자연이 오롯이 살아 있는 생태 관광지다. 멸종 위기 야생동물 2급 열목어 서식지이자,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 산양이 뛰노는 청정 지대다. 두타연은 2004년 일반에 개방했고, 2013년부터 사전 허가 없이 당일 신청으로도 출입할 수 있다. 양구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사전 출입 신청을 하거나, 여행 당일 이목정안내소나 비득안내소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된다.

두타연은 내금강에서 흘러내린 수입천이 바위를 만나 굽이굽이 휘감아 돌다가 높이 10m 폭포로 떨어진다. 두타연에는 맑고 시원한 물에 사는 열목어가 서식해, 입구에 열목어 조형물을 세웠다. 두타연 주위로 생태 탐방로와 조각 공원이 조성돼 있다. 생태 탐방로에는 두타연을 내려다보는 전망대와 정자, 계곡을 건너는 징검다리와 출렁다리(두타교), 관찰 데크 등이 마련돼 누구나 걷기 좋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근사하다. 한반도 모양으로 흘러가는 물살이 소에 떨어지며 하얗게 부서진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생태 탐방로 옆으로 지뢰 체험장이 나온다. 센서가 움직임을 포착하면 지뢰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고, ‘펑!’ 하는 폭음과 함께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가 투명한 구체 안에서 와르르 퍼진다.

고성 멀리 금강산이 보이는 위치에 자리한 통일전망대.
고성 신축 중인 해돋이 통일전망타워.
◆고성 통일전망대

대한민국 최북단 고성 DMZ로 가는 길 끝자락에 통일전망대가 있다. 통일전망대는 1984년 분단의 아픔과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금강산과 가까운 현내면 마차진리에 설치됐다. 휴전선의 동쪽 끝이자, 민통선 북쪽 10㎞ 지점이다. 가슴 아픈 풍경만 있는 건 아니다. 해안선을 따라가면 시리도록 아름다운 금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강산 1만2000봉우리 가운데 아홉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구선봉과 ‘바다의 금강’이라는 해금강이다. 해마다 약 50만명이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금강산과 해금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배율 망원경을 이용하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북녘을 세세히 볼 수 있다. 통일전망대 옆에 건설 중인 통일전망타워도 조만간 개장한다. 주차장 끝에 마련된 6·25전쟁체험전시관은 사진과 유물로 한국전쟁을 만나는 공간이다. 포탄이 쏟아지는 소리와 총소리가 울려 퍼져 현장감을 더한다.

통일전망대로 가려면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출입 신고서에 탑승자와 차량 정보를 기재하고 입장료(3000원)를 지불하면 출입증을 준다. 통일전망대에서 나오는 길에 DMZ박물관에 들러도 좋다. 1953년 유엔군과 북한군이 체결한 정전협정으로 탄생한 DMZ를 주제로 전쟁의 기억과 흔적,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담아 조성했다. 야외에는 동부전선을 지키다 2010년 철거된 철책을 옮겨 조성한 휴전선철책길이 있다.

임진각 평화누리 김언경 작가의 ‘바람의언덕’.
◆파주 임진각


경기 파주 임진각평화누리의 부챗살처럼 펼쳐진 ‘음악의 언덕’은 2005년 세계평화축전 때 조성한 9만9000여㎡(3만평) 잔디 언덕이다. 야외공연장 쪽에서 보면 맑은 하늘과 흰 구름이 익숙한 컴퓨터 바탕화면이 떠오른다.

임진각평화누리의 또 다른 매력은 설치 작품이다. 최평곤 작가의 ‘통일 부르기’는 임진각평화누리의 랜드마크다. 대나무로 엮은 3~11m 인물상이 땅에서 솟으며 차례로 나아간다. 김언경 작가의 ‘바람의 언덕’은 3000여 개 바람개비가 알록달록 무리지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드닥’ 소리를 내며 날갯짓한다. 빨간 대형 압정도 눈에 띈다. 배우 이광기의 작품이다. ‘분단에서 통일로, 여기 평화의 핀을 고정한다’는 뜻이다.

임진각은 임진각평화누리와 주차장 뒤에 있다. 지상 3층, 지하 1층 건물로 실향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징적인 장소다. 옥상은 전망대로 개방한다. 임진각평화누리, 자유의다리 등 임진각국민관광지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맞은편은 독개다리 스카이워크 ‘내일의 기적소리’ 방면이다. 독개다리는 한국전쟁 당시 부서진 옛 경의선 상행 철도다. 오랜 시간 남은 5개 교각을 길이 105m, 폭 5m 스카이워크로 단장했다.

제3땅굴 DMZ영상관 앞 상징조형물.
내일의기적소리에 들어서기 전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등록문화재 78호)를 지난다. 반세기 넘도록 DMZ에 방치된 것을 임진각국민관광지로 옮겨 왔다. 1000여발의 총탄 자국이 역사를 증언하고, 곁에는 뽕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기차 화통에서 자란 뽕나무를 옮겨 심었다. 자유의다리도 바로 옆이다. 휴전협정 뒤 국군과 유엔군 포로가 건너오고, 7·4남북공동성명 때 남북회담 대표가 오간 다리다. 임진각국민관광지에서 제3땅굴 견학(평일 09:20~15:00, 주말 09:20~15:30)을 신청할 수 있다. 제3땅굴 견학은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며,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