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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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끝물…책 한 권 끼고 떠나는 서점 여행

마음의 양식도 차곡차곡/이색서점 골라가는 재미/숲속에… 가정집에… 텃밭에…
어느새 가을도 끝물이다. 단풍도 낙엽으로 지고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돈다. 여행지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따스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하고 싶어진다. 혼자 떠나도 어색하지 않을 때다. 집을 나서서 어딘가로 떠나보자.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가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아예 목적지를 책방으로 잡아도 좋다.

독립 출판물을 소개하는 독립 서점부터 역사와 과학 등 전문 서적을 취급하는 전문 서점, 손때 묻은 책을 다루는 헌책방까지 다양하다.

책 읽기 좋은 계절, 한국관광공사가 책방으로 떠나기 좋은 책방 여행지를 소개했다.
괴산 숲속작은책방
◆취향대로 골라가는 책 여행

강원 원주의 책방은 오붓하다. 작은 서점이 산골에, 골목 뒤쪽에 한적하게 둥지를 틀었다. 책방 주인의 정성이 담긴 책이 소박한 책꽂이를 채우고, 커피 향 그윽한 나무 탁자가 온기를 전한다. 터득골북샵, 스몰굿씽, 책방 틔움 등이 원주에서 만나는 작은 책방이다.
원주 스몰굿씽 서점 입구
‘터득골북샵’은 산골에 터를 잡았다. 흥업면 대안리의 옛 지명이 터득골이다. 출판 기획자와 동화 작가 출신 주인 내외가 터득골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었고, 2년 전에 문을 연 산골 책방은 도심을 벗어난 작은 쉼터로 자리매김했다. 명상, 자연 등 마음과 삶을 다독이는 책을 주제로 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도 있다. 시중에 회자되는 베스트셀러 대신 책방 주인이 엄선한 책이 따뜻하게 서가를 채운다. 차와 음식을 맛보는 공간은 아늑하다. 책방에서 산길로 연결되는 뒤쪽에는 작은 공연장이 있으며, 책과 예술을 테마로 숲 속 강좌와 캠프가 열린다. 서점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열며, 월·화요일에 쉰다.
원주 책방틔움 입구
판부면 매봉길에 자리한 ‘스몰굿씽’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에 실린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A Small Good Thing)’에서 따왔다. 이곳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작은 쉼터를 꿈꾼다. 주인은 원래 회계사였다. 한때 귀농을 꿈꾸다 원주에 정착했고, 책이 좋아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기억을 되살려 3년 전 서점을 열었다. 주인장이 직접 내린 드립 커피와 홍차를 맛볼 수 있다. 붉은 벽돌이 드러난 서가에 꽂힌 책은 1000종이 넘는다. 취향에 따라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갖췄다. 서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문을 열며, 화요일에 쉰다.
원주 터득골북샵의 그릇 장식
다양한 독립 출판물을 만나려면 ‘책방 틔움’으로 발길을 옮기면 된다. 원주역 인근에 자리한 서점은 소장한 책 95% 이상이 독립 서적이다. 카페로 사용되던 공간을 개조해 지난 1월 독립 서적 전문 책방으로 문을 열었다. 수익금은 지역 청소년을 위한 지원금으로 활용된다. 여행기와 에세이를 포함해 사랑, 이별, 병상 일기 등 다양한 소재를 담는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독립 출판물 관련 모임을 마련하고, 매달 마지막 금요일 밤은 책, 인문학 등 다양한 주제로 심야책방을 연다. 11월에는 ‘술의 인문학’을 테마로 술 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대구 물레책방 지기가 추천하는 책들을 모아놓은 책상
대구 수성에 있는 ‘물레책방’은 대구 동네 서점의 터줏대감이다. 2010년 4월 23일 세계책의날에 문을 연 물레책방은 헌책방이지만 수험서나 일반 잡지는 찾아볼 수 없다. 책방지기의 주요 관심사인 인문학, 사회과학 책이 가득하다. 물레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취향이 엿보이는 서가가 있다.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도록 판매하지 않는 책을 모아놓은 공유 서가다. 책방을 시작할 무렵, ‘무소유’가 법정 스님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정상적인 값에 거래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눔과 공유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공유 서가에는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눈길을 끈다. 한 권이 아니다. 제목이 같지만 표지가 다른 책이 판본별로 꽂혔다. 권정생 작가의 대표작 ‘몽실 언니’도 여러 판본이 있다. 저자와 진행하는 북 콘서트는 물론, 지역 청소년이 토론회를 펼치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물레책방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유료 행사도 있지만, 대다수 행사는 헌책 한 권이면 된다. 헌책방에서 나만의 취향을 차분하게 찾고 싶다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일요일 휴무) 사이에 들르면 된다.

◆머물면서 즐길 수 있는 서점

책방으로 떠나는 가을 여행. 충북 괴산 미루마을의 ‘숲속작은책방’은 딱 어울리는 곳이다. 서점은 동화책이나 일러스트 북에 등장하는 집처럼 예쁘다. 야트막한 나무 담장 뒤에는 아담한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고, 분홍색 벽에 테라코타 기와를 인 이층집이 서있다. 담장 옆에 붙은 간판이 아니면 서점인지 모를 정도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어느 작가의 서재나 거실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사방 벽에 책이 빼곡하다.
괴산 숲속작은책방
숲속작은책방은 2014년 4월에 문을 열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던 백창화씨는 아들에게 책 읽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어린이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책으로 작은 사립 도서관을 만들었고, 아들이 커서 대학생이 되자 오랫동안 꿈꿔온 귀촌을 결심했다. 전원생활을 열망하던 회사원 남편도 기꺼이 동참했다.

가정집에 문을 연 ‘가정식 서점’이라는 특성 때문에 책을 많이 둘 수 없으니, 부부는 좋아하는 책 위주로 선택했다. 실용서나 경제·경영, 자기 계발 분야 책보다 인문·교양서와 에세이가 주로 보인다. 판매하는 책은 대략 3000종이다. 책꽂이를 비롯한 가구는 남편이 직접 만들었다. 책방을 둘러보면 부부의 따스함과 다정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부부가 권하는 책에는 일일이 소개 글과 감상을 써서 띠지로 둘렀다. 
광양 농부네 텃밭도서관
도서관보다 놀이터에 가깝다. 전남 광양 ‘농부네텃밭도서관’에선 주변의 모든 것이 놀잇감이 된다. 마당의 잔돌로 땅따먹기 하고, 야트막한 언덕에서 사계절 썰매를 타고, 꽃 반지를 만들고 강아지랑 놀기도 한다. 아담한 연못을 가로지르는 줄배는 텃밭도서관의 최고 인기다. 배는 아이들 서넛이 타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고, 연못은 아이들 허리 깊이라 안전하다. 연못가 감나무와 느티나무를 잇는 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연못을 건널 수도 있다. 텃밭도서관이 이곳에 처음 문을 연 것은 약 20년 전. 지역에서 마을문고를 운영하던 서 관장이 자기 집 텃밭으로 도서관을 옮겨 온 것이 시작이다. 수만 권에 이르던 장서를 어린이책 수천 권만 남기고 정리하는 대신, 마당과 연못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마당 한쪽 굵은 느티나무 위에 지은 나무 집도 서 관장의 솜씨다. 누구나 올라가서 멋진 전망을 즐기고, 원하면 나무 향이 솔솔 풍기는 아담한 방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